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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Feb 17. 2022

아름이랑은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지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다 다른 것 같아

 소고기와 힘줄, 버섯과 부추가 들어간 말간 전골을 가운데 두고 각자 소주와 청하를 마시던 우리는 취기가 오르자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숯불구이집에서 술 몫으로 닭 목살구이를 시켰다. 둥그런 테이블엔 식욕에 비해 안주가 넘쳤다.     


 그는 최근에 단편을 한 편 찍었다. 그의 고향인 작은 섬에서 적은 인원, 적은 돈으로 빨리 찍었다. 우리는 일 년에 꼭 두 번은 보고, 기회가 닿으면 한두 번 더 보기도 했다.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학교에서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그는 졸업을 하고 나는 아직 재학 중일 때 한 번 같이 작업할 일이 생겼는데 촬영 전에 엎어졌었다. 그와 친해진 건 졸업 후 둘 다 서울로 취업을 하고 나서였다. 지방에서 올라가다 보니 타향살이에서 의지되고 말 통하는 게 동문만 한 게 또 없었다. 그때가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그때의 우리는 어떤 얘기를 했을까. 그는 방송국에서 일했어서 방송국 이야기를 해줬다. 방송국 구경도 시켜줬다. 잘은 몰라도 좋아는 하는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영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만들었던 영화, 만들고 싶은 영화, 우리를 닮은 영화, 우리가 닮고 싶은 영화, 그냥 좋은 영화, 그냥 싫은 영화 이야기를. 우리는 여전히 잘은 몰라도 좋아는 하는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영화 이야기를 한다. 또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때보다 커진 불안과 어떤 면에서는 커지고 어떤 면에서는 줄어든 포부, 늙어 가는 부모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형제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술을 마시는 양은 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역시 훨씬 빨리 취해서 가성비가 늘었다. 그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다시 영화를 시작했다. 나는 이제 고향에서 살고 다른 삶을 준비한다. 각자의 처지에 비관보다는 낙관하며 술을 더 마셨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보면,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현재를 이야기하는 사람,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다 다른 것 같아. 아름이랑은 과거를, 아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지.’     


 말에 의도는 없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 관계,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저 시제만 두고 짐짓 발끈한 투로 말했다.     


 ‘왜요. 저랑은 왜 미래 얘기를 못해요?’

 ‘오. 그래 맞아! 미래 얘기를 해보자!’      


 우리는 웃었다. 글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미래를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 꿈꾸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말할 만한 걸 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부풀게 했던 과거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단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그래서 과거에서부터 진행형이었던 현재를 실현하고 있다. 미래 이야기는 흐지부지 됐고 금세 현재로 돌아왔다. 과거로 돌아갔다. 서글프진 않았다. 즐거웠다. 미래가 중요한 만큼 과거와 현재도 그러니까.     




 그건 그런데,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그의 문장 중 한 토막만 교묘히 빼내 다시금 생각해봤다. 미래에서 배제되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미래에 쩔쩔매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미래는, 말로 하자면 조금 까다롭다. 아니, 까다로워졌다. 과거의 나는 미래를 당연하게 말했다.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분명하게, 싱그럽게 귀엽게. 기대가 가득한 말들을 쏟아냈었다. 치열하게 설득하고 인정하고 인정받았다. 그때는 누구 와든 현재와 미래만을 말했던  같다. 쌓인 현재가 미래가  줄로만 알았던  같다. 지금은 미래가 조금만 기대되고 많이 시시해져 버렸다. 어떨까. 그의 미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래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그가 다진  자신의 마음이 그랬다. 나보다 훨씬 다부졌다. 그래서 그는 미래를 이야기할  있는 누군가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거겠지.     


 나는 미래를 그리지 않게 된 지가 좀 됐다.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의 오랜 친구가 ‘그래서 자격증 따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을 때, 계획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답이 명백하면서도 어려웠다. 내 미래는 머리에만 있을 뿐 문장이 되지는 못했다. 그건 어떤 의미일까.


 그의 말이 맞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는 다 다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서로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이 다르고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는지가 다르고 현재 사는 방식이 달라서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도 다 다르니까. 무엇보다 대화의 상대가 그가 말한 과거, 현재, 미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다르니까.     


 그의 배려였을지 모른다. 내가 덮어놓은 내 미래를 굳이 들춰서 말로 그 맨몸을 보려고 하지 않으려는. 그의 격려였을지 모른다. ‘말은 거창하지만 미래라는 거 별 거 아니잖아. 겁먹지 말고 일단 지껄여보는 거지.’ 쉽게 생각하라는.     


 내 미래를 남보다도 못하게 대하고 있었지 싶다. 다음에 그와 만날 때는 술을 좀 먹고 나서, 새 병을 시켜서, 다 마실 때까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말해봐야겠다. 그래 그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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