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짝 Nov 07. 2021

음주 작가 함현식

시작의 이유

술만 마시면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나름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 자부하면서도 맨 정신일 때의 창작열(?)은 단 한 번도 술 마셨을 때를 이길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어쩝니까. 술 마시고 쓴 글을 다 모으면 어쩌면 팔만대장경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다작의 아이콘인데(그만큼 자주 마셨는지도), 술 마시고 쓴 글은 열의 아홉도 아니고 열의 열은 다 지웠어요. 맨 정신에는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글을 어쩜 그렇게 열심히도, 심지어 흡족해하면서 썼을까요.


내일 모레 마흔이 되니 갑자기 음주 작가 함현식에게 미안해집니다. 남들에게 드러내지는 못해도 간직해줄 수는 있는 거 아닌가, 미안합니다. 


그래서, 음주 작문의 기록을 오늘부터 남기기로 합니다. 당연히 지금도 음주 상태이지요. 술 안 마셨으면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있나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은 조금 좋은 술을 마신 상태라는 거지요. 생일 선물로 받은 안동 소주 명인의 45도 짜리 술을 마셨거든요. 좋은 술을 마셨으니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음주가 아니면 불가능한 상상의 나래입니다.


술 마신 함현식을 남기자. 이게 이 글의 목적입니다. 누구나 술을 마시면 뭔가를 쓸 수 있잖아요. 메모가 됐든 누구에게 보내는 문자가 됐든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날 술이 깨면 내 머리를 깨고 싶어지죠. ‘내가 왜 그랬지?’하면서요. 우리 이제, 스스로를 용서합시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이 글은 제가 술을 마셨을 때만 씁니다. 술이 깨도 지우지 않고 올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생각보다 바보 같지 않으면 누구나 ‘아, 내가 술 마시고 끄적이거나 보낸 문자가 영 몹쓸 것은 아니구나’ 생각할 것이고, 제가 술 먹고 쓴 글이 너무나 구리면 ‘ㅋㅋㅋㅋ 역시 나는 지우길 잘했어’ 혹은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의 징표가 되겠지요. 구린 글이라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면 그건 또 나름 의미가 있겠네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글의 가장 큰 안티는 내일 술이 깨고 난 제 자신입니다. 이 글이 맨 정신의 제 자신에게 편집되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이 글은 술 마신 상태에서 쓴 그대로를 술 깨고 난 이후에도 편집없이 올리겠습니다.


-2021년 11월 7일 밤 00:38


추신 : 지우지마라 술 깬 함현식아. 창피함은 내가 책임진다.


오늘 마신 술 인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