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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미 Nov 14. 2024

엄마와 10년 만에 떠난 가을 여행

버킷리스트 달성

결혼 전,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인생 2막이라는 결혼의 장을 넘어가기 전에, 원가족과 감정의 매듭을 풀고 싶어서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되기 전에 엄마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지만, 거절당했었다. 10년 전이였으니, 엄마는 사업을 쫓아다니시느라 바쁘셔서 1박 2일의 시간을 못 내겠다 하셨다. 나는 그 말이 핑계로 들렸고, 서운함을 안고 돌아섰었다.


결혼 한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아이도 태어났고, 양가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남편의 박사 과정과 취업 과정을 서포트하고 풀타임으로 회사를 다니는 일은 나에게 번아웃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줄 모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었는데, 결이 다른 상사와 일하게 되면서 산후 우울증은 우울증이 되어버렸다.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 힘들어졌고, 병가를 냈다.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쉴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바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나신다며, 아이를 봐줄 테니 나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다니라고 하셨다. 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으면서 놀러 다니던 어느 날, 예전 기억이 나신 것인지 아니면 이효리가 엄마랑 여행 간 프로그램 ’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보셨다며, 나랑 둘이 여행 가고 싶다고 하셨다.


여행은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둘만 가기는 어색하셨는지 살짝 판을 키워서 이모와 이모네 며느리와 같이 가게 되었다. 테마는 힐링 여행이고, 장소는 춘천으로 정했고, 루트도 1박 2일이라서 간단히 정했다. 어떻게 해도 다 좋다는 엄마와 이모 덕분에, 여행은 순조로웠다. 가을 풍경을 만끽하며 엄마랑 손잡거나 팔짱 끼면서 걷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의 치맛바람 휘둘렀던 이야기, 남동생을 더 이뻐하지 않았냐는 나의 투정, 그래도 좋고 새물건은 내가 다 차지 해야 직성이 풀렸던 사정이라던지, 첫 아이여서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기억 같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사랑의 밸브가 이제야 열렸다.


그랬다. 나는 무척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안이었지만, 엄마 아빠를 고르게 좋은 점만 닮았다며 양가에서 예쁨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좋은 것들에는 엄마의 공부 욕심도 포함되어 있었어서, 많은 걸 시켜주셨다. 그 덕에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알았었는데, 잊어버렸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고, 살아오신 삶의 배경과 환경에 따라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그것에 따른 내 책임이 무엇인지 나는 분명히 알았었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 맞았다. 마음이 힘드니까 생각의 폭이 좁아졌었고, 그 좁은 마음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으로 번졌었다. 그래서 자격지심만 키워왔었다. 힘들면 그럴 수 있다. 아프면 생각이 좁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토닥토닥, 그냥 나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쉬어도 된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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