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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Jun 13. 2019

우리만은 절대로 홍콩을 못본척해서는 안된다

자동차? K-Pop? 아니다. 이제는 가치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트위터 @samtok_h77님의 작품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하나의 긴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해방과 함께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생소한 정치 체제와 만나게 되었고, 체 익숙해지기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한국 전쟁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반만년이라는 한민족의 역사를 통틀어 자유로웠던건 고작 십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유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누구보다도 강하게 타올랐다. 그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독재자에 맞서 거리로 나서고, 몇년도 안 되 앞의 독재자의 빈 자리를 다른 독재자가 채우면 또 다시 거리에 모여들어 저항하는 과정이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었다. 4.19, 부마항쟁, 5.18, 그리고 6.10,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크고 작은 저항 운동까지,  1948년에 시작해 사십년간의 인내 끝에 1987년에서야 결실을 맺은, 하나의 긴 혁명이었다. 그리고 2016년, 쓰레기통에 쳐박은줄 알았던 독재의 망령이 다시금 고개를 들자 한국인은 또 다시 거리로 나섰고, 또 다시 자유를 지켜냈다. 


우리 역사를 생각했을 때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공감이 갈수밖에 없다. 천안문 항쟁과 우산 시위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 내에서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 역시 긴 혁명의 길에서 한걸음씩 힘겹게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불과 삼년 전만 해도 똑같이 거리에 나가있던 처지였던 우리가 지금 홍콩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돕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거지, SNS가 홍콩 관련된 글로 도배되고 심지어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하는 지금의 모습이 조금도 놀랍지 않다. 긴 혁명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외부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아니 심지어는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도 거리에 나선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렇게 홍콩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나라에서는 참 조용하다.  유럽과 호주, 대만 등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발빠르게 홍콩 시민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는 성명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예외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외국의 시민운동에 대해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항상 일관된 침묵을 유지해 왔다. 2010년 아랍의 봄이 한창이었을때도, 2014년 우산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정 간섭을 싫어해서 그러는건지, 그저 막연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손해보는게 두려워 그러는건지 나는 잘 모르곘다. 다만 국가의 외교 정책이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더이상 남의 민주주의는 남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뒷짐지고 구경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린시절 도덕교과서에도 나왔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운운은 이제 정말 완벽한 헛소리가 되어버렸고, 민주주의 세력과 전제주의 세력은 20세기 초중반 만큼이나 첨예한 대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대결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은, 단언컨데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최근 몇년 사이 필리핀, 헝가리, 터키, 브라질 등 멀쩡히 돌아가던 민주주의 국가에 강한 독재의 향기를 풍기는 지도자들이 들어서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본고장 미국 조차도 상태가 영 좋지 않다. 그러나 우리만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독재를 노리던 내부의 세력을 시민의 힘으로 분쇄했고,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들에게 희망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상주의가 아니라 실리의 문제다. 양대 전제주의 패권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앞마당에 자리잡은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좌시한다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를 삼킨 독재의 파도가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닥쳐올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홍콩 시위대에 대한 지지선언 같은건 오지랖넓은 백인나라에서나 하는 팔자좋은 짓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당장 버려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국제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의 중요성을 주장해야 하는 시대다. 그래,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는 말을 빌리자면, 이건 자그마치 국격의 문제다. 이미 이나라는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이고, BTS는 빌보드차트 1위에서 내려오질 않고, 봉준호 감독은 황금야자상을 타고, 세상에 남자축구 청소년 대표팀은 덜컥 월드컵 우승을 해버릴 기세다. 물건을 팔고 문화를 수출해서 올릴 수 있는 국격 같은건 이미 다 올렸다는 거다. 여기서 굳이 더 올리고 싶다면 이제는 가치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어야만 한다. 한때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모델로 삼았듯, 이제는 전제주의의 위협에 노출된 국가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는다. 쓰잘데기없는 국제회의 100번 개최하는 것보다 몇배는 멋있는 생각 아닌가.


정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만으로 납득이 안간다면, 통일을 위한 연습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북한의 정치적 변화는 통일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아무리 지금의 평화를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지지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대로 쭉가서 결국 김정은 정권과 합치는게 바람직한 통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북한 동포들 역시 긴 혁명의 첫 걸음을 내디딜 날이 올 것이고, 거기에 힘을 보태는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쭉 다른 나라에서의 시민 운동을 무시해 오기만 했다면, 과연 우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우리의 민주주의로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것이 결국은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이것이 언젠가는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나아갈 길은 분명하다. 정부 차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홍콩 시민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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