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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Oct 24. 2019

아동음란물 범죄자를 미국으로 보낼 수 있을까?

세계 최대 아동음란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이용자들이 32개국의 대규모 국제 수사공조에 의해 일망타진되면서, 사이트의 운영자였던 한국인 손정우가 이미 2017년에 국내에서 검거되어 1년 6개월의 비교적 낮은 형량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있다. 아동음란물 관련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이름난 미국에서는 해당 사이트에서 음란물을 다운받기만 한 사람들조차도 5-10년 가량의 중형을 받은 것에 비하면 손씨의 18개월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형량이다. 오늘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미 손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손씨를 미국으로 송환하여 미국법에 따라 중형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 사건을 맡아본 경험과 약간의 독자연구를 합쳐 간단하게 정리해 봤다.


범죄인 인도는 어떤 절차인가?

범죄인 인도는 두 나라 간의 양자조약에 기반하여 청구국이 피청구국에 거주하고 있는 범죄자를 넘겨받아 청구국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와 미국 사이에 범죄인을 주고받는 절차는 1999년 12월 20일 발효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범죄인인도조약을 기반으로 한다 (이하 "한미간 조약"). 한미간 조약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의 법률에 따라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이 가능한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만 인도할 수 있으며, 실무는 양국 법무부가 담당하지만 공식적인 신청 절차는 형식상 법무부의 협조 요청을 받은 외교부간의 공문으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미국 법무부 -> 미국 국무부 => 한국 외교부 -> 한국 법무부, 이런 식이다.


인도 대상자는 일반적으로 그에 앞서 피청구국에서 인도가 법률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해 심리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진짜 재판처럼 증거를 내세우고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절차는 아니고, 청구국이 범죄 혐의를 입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아주 최소한의 증거가 있는지, 조약에 명시된 예외조항에는 해당사항이 없는지 정도만을 약식으로 본다. 어차피 제대로된 재판은 청구국으로 넘어가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심리 과정과는 별도로 법무부 장관에게는 한미간 조약이나 범죄인 인도 절차를 규정한 국내법인 범죄인 인도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경우 인도 요청 자체를 거부할 재량이 있다. 손씨의 경우 국내에서 엄청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데다가 미국의 요청이다 보니 한미동맹 문제도 얽혀 있다. 이런 민감한 인도 요청을 법무부 장관이 마음대로 정할수 있는 건 아닐테고, 아마도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손씨의 범죄인 인도는 법리적으로 가능한가?

일단 손씨가 이미 국내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이 인도를 위해 필요한 아주 낮은 수준의 증거를 제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조약이다. 필자가 미국변호사다 보니 국내의 인도 심리 절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미간 조약 내용을 쓱 흝어보는 것 만으로도 하나의 걸림돌이 눈에 띈다: 중복기소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대한민국 이외 다른 국가의 사법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범죄자가 한번의 범죄로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에 모두 피해를 입혔다고 치면, 그 범죄자가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에서 4번의 재판을 하고 4번 따로 감옥살이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자기 발로 4개국에 모두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다.

제 5조 이전의 기소
인도청구된 자가 인도청구된 범죄에 관하여 피청구국에서 이미 유죄 또는 무죄선고를 받은 경우 인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한미간 조약에는 별도의 중복기소 금지 조항이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받은 경우 미국에서 같은 범죄에 대해 인도를 요구한다면, 인도 대상자는 국내 법원의 심리에서 이의를 제기하여 인도를 막을 수 있다. 국내의 인도 심리에서 그 주장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에 들어와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항소 절차 중에도 최초 인도 과정이 한미간 조약 5조를 위반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손씨의 경우 국내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2항의 아동음란물을 "판매, 대여, 배포, 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 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죄로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을 읽어보진 않았다. 더불어 사족을 한마디 달자면, 개인적으로는 왜 최소형량이 5년인 동일조 1항의 아동음란물 "제작, 수입, 또는 수출"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는지는 의아하다. 한국변호사가 아니니 맘대로 추측하는건 피하려 한다.) 따라서 "판매, 대여, 배포, 제공, 소지, 운반, 전시, 상영"하는 것과 관련된 범죄로는 미국에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미측 공소장을 보면 미국 검찰의 기소 내용은 (1) 아동음란물 광고 공모; (2) 아동음란물 광고; (3) 아동음란물 수입; (4) 아동음란물 배포 공모; (5) 아동음란물 배포; (6) 돈세탁이다. 이중 "공모 (conspiracy)"는 해당 범죄를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조직을 구성하여 했다는 의미다. 손씨를 미국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공소장에 열거된 미국 범죄들 중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1년 이상의 징역이 처벌이 가능하며 아동음란물의 "판매, 대여, 배포, 제공, 소지, 운반, 전시, 상영"과 같은 범죄라 할 수 없을 만큼 내용이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게 될지 안될지는 아주 간단한 연구로 작성하는 블로그글에 담아낼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라 굳이 추측하지 않겠다. 하지만 분명 한국의 인도 심리와 미국에서의 항소, 양쪽 모두에서 주요 쟁점이 될 사항이다.


한국 정부는 손씨를 보내려 할까?

제3조 국적
1. 어느 체약당사국도 자국민을 인도할 의무는 없으나 피청구국은 재량에 따라 인도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국민을 인도할 권한을 가진다.


법리적 걸림돌도 있지만 사실 훨씬 더 큰 것은 정치적 문제다. 결국 범죄인 인도도 외교 문제라 1할이 법률, 9할은 정치고, 위에 설명했듯 인도 심리와는 별도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조약이나 국내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미간 조약에는 자국민은 인도를 거절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자국민도 범죄자라면 마음편히 아무 나라에나 팍팍 내보내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 정부는 자국민의 타국 인도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갖는다. 손씨처럼 이미 국내에서 처벌 받았는데 사실상 그 처벌이 우리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이 인도 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사법주권의 문제도 있어서 더더욱 꺼려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외교 문제가 그렇듯 모든 것은 청와대에 달려있다. 국내 여론과 한미 관계를 고려하여 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할 것이고, 자국민 보호와 사법 주권 차원에서 안되겠다고 판단하면 뭐든 이유를 만들어내서 거절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형사피의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굉장히 싫어한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처벌을 하는건 법원의 권한이고, 이후 같은 범죄에 대해 더 엄격한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의 역활이라,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예외다. 인도 심리에서 다퉈야 하는 법리적 요건이 충족된다는 가정 하에, 범죄인의 인도는 결국 100% 행정부의 재량에 달려 있고, 그 행정부의 수장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손씨의 미국 인도를 원하는 분들은 현재 서명자 20만명을 돌파한 해당 청와대 청원에 참여하시기를 권장한다. 이미 답변을 해야 하는 인원수를 넘어섰고, 그 수가 늘어날수록 청와대는 미국의 인도 요청을 수락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압박감의 덩치가 자국민 해외인도에 대한 부담감보다 커지면 손씨는 미국을 간다. 


우리는 손씨를 미국으로 보내야 할까?

여기서부터는 법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개인 의견이다.


우리나라법은 잘 모르지만 전세계 어디 누구의 법을 기준으로 봐도 전세계 최대 아동음란물 웹사이트의 운영자에게 징역 18개월은 아주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다. 뭐 "법조인으로써 어쩌고 저쩌고" 그런게 아니라 그냥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필자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심정적으로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가 더 처벌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미국을 간다면, 공소장 가장 앞부분에 열거된 미 연방법상 아동음란물 광고죄만을 적용해도 최소 징역 15년이다. 그 외에 혐의들이 추가로 적용된다면 만23세의 손씨가 인명을 다하기 전에 미국 연방감옥을 나오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인 암호화폐 기반 마약거래 사이트 "실크로드"의 경우, 운영자 Ross Ulbright는 무기징역형 둘(!)에 추가로 징역 40년까지 선고받았다. 가석방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찝찝함도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사 엄벌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고, 어지간해서는 무슨 죄든 한국에서 받는 처벌보다는 미국에서 받는 처벌이 클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국내에서 처벌을 덜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미국으로 핑퐁쳐 가중 처벌하는 전례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중복처벌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마 청와대에서도 논의하고 있을 사법주권 이야기도 마냥 헛소리는 아니다. 손씨를 미국으로 보낼 경우 앞으로도 미국이 얽힌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국내에서 미국 검찰이 보기에 미흡한 처벌을 받는다면 그들은 손씨의 전례를 들어 다시 송환을 요구할 것이다. 지금이야 어딜봐도 보낼만한 악질 범죄자지만, 미래에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섣불리 해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에게 있다. 국내법에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더 엄격하게 개정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일부 법조인들이 성범죄자에 대해 국민 감정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법적 판단을 하는 이 불쾌할만치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법부의 문화를 철저히 바꿔야 할 것이다. 손씨와 같은 흉악한 범죄자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수감 생활 후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상황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또 중요한 것은 정치권과 법조계에 목소리를 내서 잘못된 것을 바꾸고, 제2, 제3의 손정우와 "웰컴 투 비디오"를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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