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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Jun 19. 2020

차별금지법이 가장 급하다

2020년에는 꼭 우리의 현실이 대한민국의 이상에 닿아야 한다.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에 남아있던 남부연합 영토 내 마지막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선언한 미합중국군 고든 그렌져 장군의 일반명령 3호

1865년 6월 19일은 남북전쟁 후 미국 남부의 마지막 흑인 노예들이 해방된 날이다. 노예제를 지키기 위해 반기를 든 남부연합의 항복은 4월 3일이었으나, 워낙 땅이 넓다보니 북부군이 남부영토의 끝자락 텍사스까지 진출해서 해방을 선포하는데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그래서 이 해방기념일은 기쁜 날이면서 씁쓸한 날이기도 하다. 노예제로 인해 시작된 남북전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기고 나서는 노예들을 풀어주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려 2개월이나 지체되었다. 4월 3일부터 6월 19일까지 2개월간, 미국의 법전에는 분명 노예제가 불법이라 써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사회 전방위에서 차별당하는 미국 흑인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현실이 미국의 이상을 따라가지 못한 기간은 2개월이 아니라 150년 이상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만큼 비통한 일도 드믈다. 한일합병조약에는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한다”라는 그럴싸한 목표가 써있었으나 조선에도 일본에도 그걸 사실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부터 이미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명시했으나 그 말이 사실이 되기까지 40여년의 힘겨운 세월이 필요했다. 언어와 민족이 있는데 나라가 없는 설움, 헌법과 국회가 있는데 민주주의가 없는 설움을 느낀 한국인들이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싸웠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헌법 11조에는 이렇게 써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헌법에 분명히 차별은 안된다고 써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성별, 인종, 종교,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이 만연하다 못해 일상화 되어있다. 


빈도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법제화가 되어있지 않다보니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한일 무역분쟁이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전국 곳곳의 상점에 붙는 “일본인 출입금지” “중국인 출입금지” "외국인 출입금지" 표지판은 이미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흔한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헌법은 본래 안전망과 같은 것이라, 권리 침해에 대한 마지노선을 만들수는 있지만 생활 속에서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사례를 일괄적으로 잡아내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세밀한 언어로 쓰여져 다양한 상황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조문이 필요하다. 강제성이 없는 인권위원회법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것이다.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 사회적 합의가 있을때까지 차일피일 미뤄도 되는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남부연합 패망 이후 2개월이나 흑인 노예들이 방치되었던 것만큼, 1945년까지는 나라가 없었고 1987년까지는 민주주의가 없었던 것만큼,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나라에 2020년까지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것은 처참하게 부끄러운 일이다. 


단순한 부끄러움을 넘어 차별금지법의 부재는 현실적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최근 성소수자 사회에서 일어난 코로나바이러스 집단감염과 일부 당사자의 검사기피로 인한 방역당국의 어려움은 예견된 사태였다.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가 어떻게 모든 시민이 의무를 다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재유출로 인한 국력낭비는 또 어떤가.나는 미국으로 건너온 후 한국인이기를 포기하고 미국 사회에 정착해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철없던 유학생 시절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들 중 대부분은 여성과 성소수자, 즉 미국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애국심 부족을 논하기 전에 국가가 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했는지는 먼저 물어야 한다. 


4.15 총선 이후 176석의 거대 진보여당이 등장했다. 허나 그 많은 여당 의원들이 압다투어 수십건의 법안을 발의하면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입을 맞춘듯 함구하고 있다. 6석의 정의당에서 입법을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단 한명의 여당 의원의 지지도 받지 못해 법안 발의를 위해 필요한 10명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 권고를 한다고는 하는데, 이런 미지근하다 못해 서늘한 분위기에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21대 국회 앞에 있는 모든 현안 중에서 차별금지법이 가장 급하다. 검찰개혁보다 급하고, 4차산업혁명보다 급하고, 아무래도 좀 멀리 돌아가야 할것같은 남북평화보다도 일단은 급하다. 하다못해 시간이 난다면 자기 지역구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전화받는 비서관한테 관심이라도 표현해 보자. 변화를 만드는건 결국 우리의 크고작은 노력 뿐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언 중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도 좋아해서 연설에 자주 인용하는 표현이다. 이제는 더이상 지체할 수 있는 이유도, 변명도 없다.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미완성이나 마찬가지다. 2020년에는 꼭 우리의 현실이 그 이상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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