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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Sep 06. 2018

때로는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2018년 2월 24일 티스토리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476명의 승객 중 3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 중 250여명은 수학여행을 떠난 어린 고등학생들이었다.  참사 후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국민들의 추모 물결이 반정부 투쟁의 양상을 띄기 시작하자 동요한 청와대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순수한 유가족”만 만나겠다며 일부 유가족을 정치적 의도를 가진 기회주의자로 매도했고, 여론 조작을 통해 사건 자체를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그들의 세월호에 대한 염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청와대 내에서는 "세월호” 라는 단어 자체가 금지어가 되어 “여객선 사고” 라는 에둘러 말하는 표현까지 등장한 모양이다. 


2015년 12월 28일,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간의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합의가 타결되었다.  합의의 내용에 대해서 처음에는 찬반양론이 있었으나, 이후 일측의 성실한 이행 의사가 전무함이 드러나고,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것까지 공개되는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부는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고 언론에 공개된 후에서야 급히 여론 진화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포함되지 않은 위안부 합의에 분노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결국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를 위해 철저히 묵살되었다. 


2018년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 주의 스톤먼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 학교 졸업생 출신인 19세 청년이 AR-15 반자동소총을 교내로 들고 들어와 무차별 난사를 시작했고, 6분의 총격 끝에 17명이 교사와 학생이 죽었다.  사건 이후 생존 학생들은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민 운동을 시작했고, 이들에 호응하는 집회가 지금도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총기규제 반대 시민단체인 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생존자들의 요구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몇 명의 학생이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위해 백악관으로 초청되었지만 이들은 다수의 총기규제 반대론자와 뒤섞여 제대로 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트럼프는 “교내 총기난사를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 총기를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결론으로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이어 일부 친정부 성향의 논객들은 방송과 SNS를 통해 생존 학생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들이 “진짜 학생”이 아니라 진보 세력의 사주를 받은 배우들이라는 기가 막힌 음모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다른 시간 다른 나라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이 세가지 비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안타까운 공통점이 있다.  국가 권력이 스스로의 정치적 이익, 정책적 목표를 위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하려 한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어느 정책적 결정에나 승자와 패자는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더 큰 목표를 위해 일부 국민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 세력의 이익이나 별로 중요한것 같지도 않은 두리뭉실한 정책 목표 때문에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며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시되어 있다.  그리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인이 이미 너무나도 큰 희생을 경험한 피해자인 경우에는 이런 전제주의적 행태의 문제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해자의 고통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대승적 차원에서”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인게 아니다.  


이렇게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정치가 우선시되는 양상은 올해 들어 한국에서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는 미투운동에 대한 반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은, 이윤택 등 상습적 성폭력 이력이 드러난 일부 인물이 공교롭게도 진보 정치권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성폭력이 아닌 여성 비하로 범위를 다소 넓힌다면 어느새 스멀스멀 잊혀지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문제도 있다.  미투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서지현 검사 같은 경우에는 현 정권 법무부 장관의 대응을 문제 삼기 시작하자 일부 정권 지지자들의 비난으로 인한 2차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정치적인 손익계산으로만 본다면 보수 성향의 매체가 진보 성향 인사의 행적에만 주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는 눈이 많아서 그렇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 중 권력형 성범죄자가 더 적을 것이라고는 절대, 절대,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여성인권의 불모지로 남아있는 우리 나라에서 이제서야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 역사적 순간의 무게에 비하면, 어느 당 지지율이 조금 올라가고 떨어지느냐 하는 짜잘한 것은 미안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길게 돌아서 오긴 했는데, 결국 하고 싶은 것은 김영철과 천안함 유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사건의 본질은 김영철이 악당이라는게 아니다.  외교에서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악당과 협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일단 그렇게 따지면 인권 침해가 국가 존립의 기반인 북한 정권에서 객관적으로 악당이 아닌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보다 중요한 본질은 김영철이 다수의 우리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장본인이고, 정부가 김영철의 방문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그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대변하기는 커녕 철저히 무시했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천안함 유족들에게 사전 통보하고 양해를 구하기라도 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남북 관계 발전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 만 반복해서 되뇌는 전 정권의 실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에 대한 대응은 범죄자 김영철을 즉각 연행해야 되느니, 사살해야 되느니 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구호로 지지율이나 올려보자는 얄팍한 수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야당의 의무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자기들이 매스컴 좀 타보는게 아니라, 정부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한 천안함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눈앞의 정치적인 계산이 아닌 국민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지지율은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정치는 중요하다.  2016년 말부터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우리는 국민이 정치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또 그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렇게 쓰잘데기없이 긴 글이 양산되는 정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이기기 위해, 또 내가 원하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 당연시되기 시작한다면 그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비대해져 인간으로서의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매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대통령의 예전 선거 구호가 “사람이 먼저다” 아니었는가.  이제부터라도 노력해서 정치가 사람을 짓밟는 시대가 아닌, 정말 사람이 먼저인 시대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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