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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민 Sep 06. 2018

드루킹, 그리고 정치 블로거의 반성


*2018년 4월 18일 티스토리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블로거 출신 인물이 뉴스거리가 되면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보도하는게 언제부터 관례가 되었던가?  몇 년전 “박대성씨”가 아닌 “미네르바”가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듯, 요새는 “김동원씨”가 아닌 “드루킹” 때문에 매일같이 난리다.  궁금해서 한번 찾아보니 “드루킹”이라는 닉네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약칭 “와우” (WoW)) 이라는 게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험가의 직업 중 하나인 드루이드의 “드루” 와 왕이라는 뜻의 “킹 (king)”을 합친 것으로, “내가 제일 잘나가는 드루이드” 라는 뭔가 의외로 풋풋한 소년의 감성마저 느껴진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니 드루킹에 대해서도 전에 없던 미묘한 친근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와우에 빠져서 매일같이 밤을 새다가 새벽 6시쯤 아침형 인간이었던 룸메이트와 인사를 나누고 잠들던 추억이 나한테도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와우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플레이어들을 “얼라이언스”와 “호드” 라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두 진영으로 나눠서 경쟁을 시킨다는 점이다.  얼라이언스는 인간, 엘프, 드워프 등 판타지 소설에 흔하게 등장할 법한 간지나는 “정의의 용사”스러운 캐릭터들이 모여 있고, 호드에는 흉측한 괴물같이 생겼지만 나름 자기만의 사연을 가진 매력있는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서로 도와가며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곳이다.  와우 이전에도 진영을 나누어 모험을 하는 게임들은 있었지만, 그건 악당을 무찌르고 보물을 찾는 본연의 목표에 질리면 잠깐 여흥으로 즐길만한 양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와우는 자기 진영에 대한 소속감과 상대 진영에 대한 경쟁심이 사실상 게임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진영간의 협력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심지어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게임상에서 상대 진영의 캐릭터를 만나면 채팅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험 중 맞딱드리면 일단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공격하는게 정석이다.  내 쪽에서 괜한 호의를 베풀었다가는 등을 돌린 사이 저쪽이 언제라도 선공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호드 유저였고, 이 시절 내가 호드에 느끼던 소속감은 스포츠팀 서포터즈나 아이돌 팬클럽에서 느끼는 그런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우에 마지막으로 로그인한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이 시절 함께 즐기던 친구들과는 아직도 술자리에서 “호드를 위하여!”라는 구호로 건배사를 대신하곤 한다. 


공교롭게도 나에게 드루킹을 처음 소개한 것도 같이 와우를 하던 친구였다.  게을러터져서 최근에야 시작했지만 그 때도 술이 좀 들어가면 늘 정치 블로그를 해보고 싶다고 주절대곤 했고, 그래서 2011년쯤 친구가 요즘 제일 잘나가는 블로그라며 “드루킹의 자료창고”의 링크를 참고 삼아 보내줬다.  다른건 몰라도 드루킹의 글솜씨 하나는 나 같은 풋사과 블로거는 평가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훌륭했다.  요즘 같이 이것저것 읽을 거리가 많은 시대에 화면을 빼곡히 채우는 긴 글은 일단 독자의 Alt+F4를 부른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역사 이야기를 꺼내거나 이름 긴 외국 철학자의 안부를 묻기 시작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드루킹의 정치 분석은 길고 복잡했지만 늘 정치글이 아닌 잘 쓰여진 무협지를 읽는 듯 훌륭한 가독성을 자랑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인데, 그런 측면에서는 지금도 그에게 배울 것이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댓글조작 사건의 진상이야 수사당국이 밝힐 일이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라도 드루킹은 블로그의 내용 만으로도 비판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화려한 글솜씨와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드루킹 글의 본질은 결국 음모론 퍼트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은 단연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 안철수의 등장, 심지어 탄핵정국까지 모든 것을 친이계 세력이 계획한 큰 그림의 일부로 보는 “전지적 MB시점”의 음모론이었다.  이를 위해 정치권 동향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이야기의 기본 줄기를 만들고, 여기에 양념으로 틈틈히 꾸며낸 내용들을 뒤섞어 묘하게 설득력있는 한편의 작품으로 만드는 수법을 사용했다.  최소한 나꼼수에서는 사실과 각색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여기부터는 소설”이라며 경고라도 해주었는데, 드루킹은 마치 자신에게는 그 경계가 존재하지도 않는 양 팩트와 픽션을 마구 짬뽕하며 독자를 현혹시켰다. 


정치를 음모론 중심으로 이해하는건 위험하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보통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음모론은 그 존재만으로도 정치적 회화의 수준을 퇴화시킨다.  정치 이야기를 하는 궁극적 목적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고, 설득의 첫 단계는 이해하는 것이다.  설사 상대가 완전히 글러먹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의 인생 경험과 철학에 비추어 보아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 정도는 해봐야 바꿀 수 있다.  무지 어려운 과정이지만,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모론에 빠져들면 이런건 전부 생략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저 어딘가의 흑막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빠져들었을 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계몽이 필요할 뿐이다.  결국 이런 사고는 정치적 회화의 수준을 와우와 같은 게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상대 진영의 지지자들은 설득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악당의 음모에 빠진 무지몽매하고 처량한 민초들일 뿐이다.  남는 건 이미 서로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자기들은 정의의 편을 고른 깨어있는 시민이라며 소속감을 즐기는 것 밖에 없다.  와우하던 시절 호드의 수도에 모여서 얼라이언스 애들은 무개념한 비매너 유저밖에 없고 역시 호드가 짱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어린 아이처럼 하찮은 우월감을 느끼던 우리들의 행동과 무엇이 다른가.  


설득의 상실과 배타적 진영논리의 고착화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고장 낼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다.  우리편이 옳고 상대편이 틀렸는데 우리편 밀어주는게 뭐가 잘못이냐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정치 세력을 두고 완전한 "우리편"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세상에는 오만가지 정책이 있고 하나의 정책에 대해서도 단순한 찬반 이외에 수많은 의견이 존재하는데, 정말 자기의 정책적 취향이 하나의 정치 세력과 100% 일치한다면 그건 본인의 정책적 이해도부터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지지자로서 피동적 기능과 능동적 기능을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  피동적 기능은 물론 나와 조금이라도 더 잘 맞는 쪽이 잘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능동적인 기능은 내가 지지하는 쪽도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의 원동력이 바로 설득이다: 우리 진영의 약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상대 진영의 약간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내가 원하는 변화를 함께 만드는 아군이 되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상대 진영이 먼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면 저쪽으로 넘어가 버릴 수 있다는 위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드루킹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상대 진영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집단이 아닌 어떤 경우에도 협력할 수 없는 단일화된 적이 된다.  우리 진영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변하든 변하지 않든 무조건 따라게 된다.  민주주의 시민의 능동적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오로지 자기 진영의 승리에서만 찾는 눈먼 팬심이 판을 칠 뿐이다.  심지어 와우에서조차 요즘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하면 캐릭터 진영 변경이 된다는데, 오히려 현실이 한번 진영을 정하면 영원히 따라가기만 하는 곳으로 변해버리고 있다. 


드루킹과 같은 류의 정치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고한 지지기반을 만들기 위해 그들과 결탁한 정치 권력 모두 진영을 막론하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보면 댓글조작 사건 같은 것도 이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뚜렷한 주관을 갖고 정치 컨텐츠를 소비하는 능동적인 시민이라면 사이버사령부가 하든 드루킹이 하든 댓글 조작 같은거에 동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기를 얻어온 많은 정치 컨텐츠가 대화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끌어내리는 것, 새로운 정보나 사고방식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짠 프레임을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것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이런 컨텐츠의 소비 역시 피동적이고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적어도 "그냥 내 지식을 과시하는 것" 보다는 근사한 목표를 가지고 인터넷에 정치글을 쓰는 사람이면 내가 쓰는 글이 독자를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그저 피동적으로 속이려 드는가, 늘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독자의 불신을 고취시키고 시야를 좁히는 글 보다는 독자가 더 깊게 생각하고 새로운 의견에 마음을 열게 하는 글을 써야 한다.  여기야 우리 와이프도 끝까지 잘 안읽어주는 초라한 블로그이니 나하고는 크게 상관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드루킹 사태에서 얻어가는 교훈은 그렇다. 


아 한가지 더 – 그 인간, 분명히 얼라이언스 였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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