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교의 싸움, 관중석에 신은 없었다
*항상 그럴것이지만,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말투는 조금 건방질지도 모릅니다.
너무 무섭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과 같은 영화처럼, <위커맨>역시 (본인 기준에)왜곡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 들어가게 된 외부인의 공포심을 다루는 영화다. 나는 특히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 소름돋는 기분을 느끼는데, 공포의 대상이 귀신이나 악마와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사상의 차이로 인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너무 무섭지 않은가? 분명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되었는데, 사람들은 잘못된게 아니라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나를 죽이려고 한다니. 더 무서운 것은 상대를 도저히 설득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우. 정말 무섭다.
한 소녀의 실종, 이상한 마을 사람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경찰관 하위 경관에게 익명의 편지가 날아온다. 섬머아일이라는 외딴 섬에서 로원 모리슨이라는 소녀가 실종되었다는 제보였다. 하위는 그 편지와 소녀의 사진 한 장을 들고 홀로 섬머아일 섬을 조사하러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얼핏 친절해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수상한 행동들을 일삼는다. 처음에는 모르는 소녀라고 하더니, 점차 로원 모리슨에 대한 단서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술집에서 단체로 천박한 노래를 신나게 부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하위는 수사에 비협조적이면서 자신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어긋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끈질기게 수사에 임한다.
위커맨이 다루는 종교
이 영화에서는 하위 경사가 믿는 기독교와 마을 사람들이 믿는 드루이드교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길거리에서 성관계를 가지거나, 목감기에 걸린 아이 입에 개구리를 넣었다 빼는 민간요법 등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지금 보면 문화의 차이로 인정할 수도 있을법 하기도 하다. 오히려 독실한 기독교인인 하위의 강압적인 태도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원 모리슨 실종사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분명히 마을 사람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명백히 하위가 선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마냥 선으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상술했던 하위의 태도문제도 있고, 혼전순결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직 동정의 몸을 가진 하위가 술집에서 나오는 음란한 음악과 옆 방 술집 딸의 유혹에 견디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하위의 신념 역시 마냥 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하위는 결국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마을에 저주를 내리기도 하고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이내 노래부르기를 멈추고 하늘을 보며 신에게 간청하지만, 그런 하위의 절규는 마을 사람들의 노래와 북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불에 타 쓰러지는 위커맨의 머리 너머의 석양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밝은 노을을 내뿜기만 한다.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드루이드교의 모습들을 보면 진짜 드루이드교가 그런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기독교의 교리들을 조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하고 음란한 가사의 노래를 단체로 입을 맞춰 부르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드루이드교라기보다는 그냥 '반기독교'라는 종교의 형태같기도 하다. 영화가 나온 1973년 기준으로 2년 전에 나온 켄 러셀의 <악령들>의 표현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둘 다 독실한 크리스천 관객이 관람한다면 뒷목잡고 쓰러질 영화다.
풍뎅이는 제자리에서 돌고 또 돌아요.
그러다가 불쌍하게도 끈이 바짝 감겨서 꼼짝도 못하죠.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식
<위커맨>의 세계관이 하위 경사를 잡아 먹는 방식은 완벽하게 하위를 속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기 보다는, 너무 쉬운 일이라 그에게 희망적인 요소를 남겨주며 가지고 노는 인상이 크다. 모두가 모른다고 했던 실종된 소녀 로원에 대해 어린 소녀 머틀은 처음으로 안다고 대답하지만 결국 머틀이 말하는 로원은 사람이 아니라 산토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로원의 무덤을 발견하고 영주의 이장 허가를 받아 관뚜껑을 열게 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산토끼의 사체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위가 어떤 단서를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며 관객또한 이 실마리가 풀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그 단서들이 하나같이 가짜라는 것들이 밝혀지면서 관객들도 같이 속게 된다. 하위와 로즈 선생의 대화 씬이 이러한 <위커맨>의 방식을 함축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식은 꽤 많이 반복되어서 나중에는 속지 않을 것 같지만, 마지막에 관객과 하위는 크게 한 방 뒤통수를 맞으면서 결말부에는 전혀 어떤 희망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들을 속인다. 칼로 만든 다윗의 별 가운데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빠져나가는 의식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며 하위는 설마 진짜 목을 자르겠냐는 독백을 하지만, 여기서 관객은 어느정도 진짜 목을 자를 것 같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로 목을 자른 후에 그 목이 가짜라는 것도 드러나게 되면, 관객은 이미 이 영화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된다. 인신공양의 의식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영화 속 하위가 섬머아일 섬에서 헤메는 과정 자체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광대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위와 함께 속아넘어가는 관객들의 감상 과정 자체 역시 영화를 위한 하나의 의식인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풍요를 기원했듯, 영화의 흥행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크리스토퍼 리의 존재감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수려하지만, 특히 섬머아일 섬의 영주 역할로 출연한 크리스토퍼 리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우리에게는 <반지의 제왕>시리즈의 사루만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배우지만, 위커맨에서의 모습은 사루만보다는 과거 <드라큘라의 공포>에서의 드라큘라 백작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키가 워낙 크고 목소리가 참 중후한 크리스토퍼 리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 자체가 더 힘이 강해진 느낌이 든다. 내러티브적으로도 영주는 출연하기도 전부터 내내 마을사람들에게 법보다 위에 위치한 지배자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이 심어진 상태이며, 유일하게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던 그가 90분짜리 영화가 40분이 진행된 후에야 하위 경관과 독대하게 되는데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 크리스토퍼 리가 등장하니 영주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워낙 괴상한 역할을 많이 해왔던 배우라서 지금 보면 마을의 영주라는 역은 나름 점잖은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요란한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특유의 목소리와 거대한 키, 약간 마른 듯 한 몸을 가지고 관객들을 확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배우임에는 확실하다.
사랑을 인정받았다는 증거
2006년에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리메이크 버전도 있다. 워낙 아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라 아직 감상하지는 못했다. 리메이크 작품의 완성도는 제쳐두고서, 리메이크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이 작품이 훌륭한 작품인지 제작자들 입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 작품이라 많이 감상했으면 좋겠다.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의 원형과 같은 영화기에 <미드소마>를 좋아하는 관객분들이라면 <위커맨> 역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본 리뷰는 페이스북에 2019년 11월 29일 게재한 리뷰를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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