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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Jan 17. 2021

지금 여기, 엄마 사람

남태평양 한가운데, 7번째 한여름을 지나는 가운데

5년 전 이맘때 호주까지 내 결혼식을 보러 와 준 나의 베프 둘, 한 명은 비혼주의자이고 또 한 명은 딩크족이다. 근데 이렇게 ‘~주의자’, ‘~족’이라고 명명하고 나니, 마치 그들이 자신의 인생길에 확실한 네임택을 달고 사회에 어떤 무브먼트(movement)라도 일으키는 신인류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나를 포함한 우리 셋은 가능한 최선을 다하여 자유롭고 게으르게 살고 싶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굳이 페미니즘까지 외치지 않아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남녀 불평등한지 알고, 굳이 3포 세대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부모 도움 없이 한국에서 맞벌이하며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 무엇보다 나의 행복을 남들 다 하는 거 해보고 살기 위해 저당 잡히는 짓은 딱하고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어쩌다 외국에 와서 얼떨결에 외국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웨딩드레스를 꿈꾸어본 적이 없는 여자 사람이었다. 또 어쩌다 아이를 낳고 하루에 아이 사진 백장씩 찍는 도치맘이 되었지만, 그전까지 밖에서 아이들을 봐도 사랑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던 무심한 어른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으니, 비혼주의자와 딩크족 동지들이 보기에는 낯설고 어색했을 것이다. 어쩌면 배신자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느덧 7번째 여름을 지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거리만큼 그 두 친구와의 관계도 한해 한해 조금씩 소원해졌다. 근데 사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 시공간의 차이는 소통의 큰 장벽이 아니다. 그러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산다는 좋은 핑계로 나는 이제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억울했다. 아직도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여행, 문학, 음악, 영화, 예술이 흘러넘치고, 인권, 평등권, 페미니즘, 퀴어, 진보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시작한 인스타그램의 내 피드에는 온통 아이 사진과 육아 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인스타를 하지 않는 친구가 어쩌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내 인스타 최근 피드 몇 개를 스크린 샷 해서 보내곤 했다. ‘해가 뜨면’이 아닌 ‘애가 깨면’으로 시작하는 주 7일 24시간 애만 보고 있는 나의 일상, 동요 말고 내 음악을 제대로 즐겨본 적 언제인지, 영화 한 편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몰입하며 본 지가 언제인지, 일부러 육아서를 피해 책을 좀 읽으려고 해도 이상하게 ‘엄마, 아이, 육아’ 단어가 자꾸 똥파리처럼 꼬이는 이 현상은 대체 무엇인지. 세상의 다양한 가치와 소수자들의 마땅한 권리에 관심을 가지기 이전에, 지금 여기 나와 아이밖에 없는 것 같은 망망대해 한가운데 엄마 사람의 인권을 부르짖고 싶은 나의 안부.


그러니까 친구는 억울했을 것이다. 어쩌다 해외 사는 오랜 친구가 문득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물었는데, 애로 시작해서 애로 끝나는 온통 육아 애로 사항 답답해 죽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것도 톡에 직접 타이핑할 시간이 없는지 에너지가 없는지 인스타 스크린 샷 샷 샷! 근데 빼곡히 적은 그 구구절절 글자들을 보아하니 애지간히 힘들기는 힘든가 본데, 당최 친구로서는 관심도 공감도 가지 않는 먼 나라 남의 이야기, ‘아 그래. 그렇구나.’로 이어지는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다음 안부를 다시 묻기까지 시간도 에너지도 더 많이 필요하다. 그렇게 거리가 생긴다.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거리보다 더 먼, 관심과 공감의 심리적인 거리가. 그렇게 애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혼자서 똥도 못 싸고 힘들어 죽겠다면서, 애 때문에 또 힘이 나고 행복하다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까지 듣게 되면, 친구는 내 인스타에 쳐들어와 ‘싫어요’를 누르고 싶을 것이다.





금요일 밤 여기에 사는 한국 엄마들과 집에서 소주 파티를 열었다. 솜씨 좋은 호스트가 골뱅이 소면에 어묵, 계란말이, 과일 화채까지 황송하기 짝이 없는 안주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술이 오고 가고 말이 오고 가고, 서로 건배를 하며 “그죠 그죠!” “맞아 맞아!”를 연발하는 우리들.  지금 여기에는 한국에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두고 홀로 호주에 와서, 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있는 엄마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해외 살이의 외로움과 늘 부족한 영어 소통의 고단함, 또 내가 나고 자라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답답함, 이 기분을 한국에 있는 누구에게 이야기하면 공감받을 수 있을까. 힘들다고 징징대면 나 좋다고 가놓고 선 그렇게 힘들면 돌아오라는 답이나 듣겠지. (정말 들었다!)


술병이 하나둘 비워지고 시간은 자정을 넘긴다. 드문드문 지금 여기가 아닌, 한국에서의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아, 그랬구나.”로 이어지는 대화, 나는 문득 아직 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낯선 이들과 한국에 두고 온 나의 오랜 친구들을 같이 떠올려본다. 시절 인연이라고 했던가, 만약 우리가 그때 거기에서 만났다면, 지금처럼 네 맘 내 맘 함께 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끝내 술이 덜 취해서 내 옛이야기는 꺼내지 못한 그날 밤, 나는 이제 내 옛 친구들에게서 받을 수 없는 위로와 응원을 찰랑찰랑 넘치게 받았다. 지난번 우리 아이를 본 엄마가 아이 무릎이 거칠더라며 챙겨준 자운고 크림, 아침 해장도 못 시키고 보내 미안하다며 챙겨준 누룽지까지 받아 들고 다음날 아침 (외박!!) 집에 오는 길, 마음이 참 든든했다.


지금 여기, 엄마 사람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호주 사는 한국 엄마들의 불금의 소주 안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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