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맘 Mar 13. 2021

엄마도 이제 돈 번다!

호주 어린이집 하루 10만원

올해 초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둘이 복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이제 곧 세 돌이 되려는 시점이고, 둘째 계획은 전혀 없는 엄마들이었다. 평소처럼 어느 날 아이들과 같이 놀이터에서 보자고 문자를 했는데,

미안. 나 다시 일 시작했어.
ㅇㅇ는 이제 주 3회 어린이집에 가.
근데 내가 지금 일하러 가는 중이라 좀 바빠서,
다시 연락할게 미안.


답문자를 받았고 아침부터 맥이 탁 풀렸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정말 잘됐다고 축하 문자를 보냈지만, 이제 바쁜 워킹맘인 그녀에게서 다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집에 노는 엄마인 나만 이제 같이 놀 친구가 떠나버려서 섭섭했다.







호주는 어린이집이 하루 10만원 정도로 꽤나 비싸다.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는 정부에서 일부 보조를 받지만, 그래도 엄마가 웬만큼 돈을 잘 벌지 않는 이상, 아이를 주 5일 어린이집에 맡기고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은 가정 경제에 있어 오히려 손해다. 그래서 보통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기 전까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집에서 아이를 보는 엄마들이 많다. 며칠 전 호주 뉴스에서도 남녀 임금 불평등 문제가 비싼 어린이집 비용에 그 원인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출산과 육아 문제로 여성들의 경력 단절은 호주가 한국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삶의 만족도나 아이들 양육 환경은 참 좋은 곳이라, 아직도 호주에서는 아이들 셋넷 낳는 사람들이 많고 출산율이 높다.


아직까지 호주 영주권이 없는 우리는 아이가 세돌이 다 되어서야 일주일에 겨우 한번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십만원, 아직도 그 비용을 생각하면 집에서 노는(!) 엄마가 아이를 그냥 집에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아이가 혼자 밖에 나가 새로운 세상도 만나고, 엄마 아빠 말과 다른 이곳의 말인 영어와도 친숙해지게 하기 위해서 아이를 보냈다. 이제 고작 한 달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어느 날 부엌에서 숟가락을 들고 와 ‘스푼’이라는 말을 했다. 아이의 몸무게는 줄곧 또래 아이들의 하위 3% 좀처럼 잘 먹지 않는 아이라서, 집에서는 엄마가 한입만 한입만 하면서 아직도 매일 밥을 떠먹여 준다. 그래서 제 손으로 수저를 쥐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제 손으로 밥을 먹고 스푼이라는 말도 배워온 것이다!


지난달에 아이를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에 보내고 보호자실에 앉아 동네 아르바이트 공고에 이력서를 보냈더랬다. 자주 같이 어울리던 동네 엄마가 일을 구해서 이제 자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문자를 받은 얼마 후였다. 알바 공고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을 구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출산과 육아로 3년 넘게 일을 하지 못했던 나의 구구절절한 자소설(!)에 감동한 담당자가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나도 일을 구했고 계약서를 썼다. 파트타임이라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밖에 나가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아이가 밖에 나가 제 손으로 밥을 먹게 된 것처럼! 물론 엄마와 주부로서의 집안일이 얼마나 고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출산 후 오래 집에 있으면서 숫자로 환산되는 경제적인 가치, 타인이 인정하는 사회적 위치가 없는 존재로서 내 자존감은 가끔 무너지곤 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일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실수할까 긴장도 되고, 부족한 영어를 들킬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나를 자극하는 묘한 떨림과 설렘, 다시 바깥일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돈보다 더 나를 기쁘게 했다. 아이를 비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과 이상한 죄책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 시작해서 아직 미숙한 초보 운전이지만, 혼자 차를 몰고 일을 하러 갈 때면 커리어 우먼이 된 듯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나의 본분은 엄마, 주된 직업은 주부이지만, 일주일에 하루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더는 엄마 아기가 아닌 어엿한 어린이가 되는 것처럼, 엄마도 아이와 집을 벗어나 다른 사회의 일원 경제 활동을 하는 어른이가 되어본다.






(+)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일주일에 한편 글을 쓰겠다는 새해 결심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네요. 그래도 늘 써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또다시 해보며, 늘 제 게으른 글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천일 아이, 이제야 어린이집 문턱을 넘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