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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Sep 12. 2022

엄마! 일어나. 이제 봄이 왔어.

춘구월, 내 마음에 다시 꽃이 피기까지

정확히 6월 1일, 찌릿하는 신호가 느껴졌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보이지 않는 나의 그림자, 반갑지 않은 나의 오래된 손님, '이제 잠을 잘 시간이야' 나에게만 들리는 그 목소리, 겨울의 시작과 함께 마음에 감기가 찾아왔다. 세상만사 다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도 자도 잠이 왔다. 나의 인력(人力)보다 중력을 빌린 침대의 인력(引力)이 더 크게 느껴지는 매일 아침, "엄마! 일어나. 아침이야. 배고파 배고파." 절대 멈추지 않는 내 모닝 알람에 겨우 눈을 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모닝 사람이 내 눈꺼풀을 잡아당겨 강제로 눈을 띄어주었다. 까딱하기도 싫은 손가락으로 식빵 하나를 토스트기에 넣고 우유를 따랐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우면 아침 식사를 끝낸 나의 모닝 사람이 다시 내 침대로 왔다. 그리고 똥을 쌌으니 씻겨 달라거나 물감 놀이를 하자는 등의 다음 주문을 했다. 침대의 인력보다는 그의 인력이 더 센 탓에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야 했다.


올해 처음 주 4일 유치원에 가는 아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매일 콧물과 기침을 달고 왔다. 그 감기는 다시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져 겨울 내내 몸도 아팠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이는 몸의 감기는 핑곗거리라도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지금 그곳에 갈 수 없는 이유, 내가 지금 당신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 내가 지금 휴식이 필요한 이유, 내가 지금 좀 자야 하는 이유... 지난겨울 몸도 아팠던 덕분에 그 핑곗거리를 여기저기 남발하며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겨울잠을 잤다. 같이 사는 남편과도 두 달 가까이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다만 지구상의 단 한 사람, 나의 중력보다 센 네 살배기 아이만큼은 세상 그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아이의 식사를 챙기며 나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나도 집 밖으로 나갔다. 지난겨울 침대가 나를 삼킬 수 없었던 이유는 아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겨울이 지났다.






아이의 영어 동화책 When I'm Feeling Sad (내가 슬플 때)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When I'm feeling sad I feel like someone has taken all the colours away... and everything is grey and gloomy and droopy. (나는 슬플 때 나는 누군가가 모든 색을 빼앗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모든 것은 회색이고 우울하고 축 늘어져있지.)


나의 오랜 이 마음의 병은 슬픔일까. 어느 날은 아침에 아이 유치원을 보내고 혼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철 지난 인간극장을 보다가 꺼이꺼이 울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도 보지 못하고 암 투병으로 결국 생을 마감하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턱밑까지 가득 차오른 알 수 없는 이 감정을 뜨거운 눈물로 솟구쳐 내보내고 나니 한결 시원했다. 열세 살에 암으로 엄마를 잃었던 어린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울고 있을까. 그런데 이제 나는 그 어린아이를 두고 가야만 하는 엄마에게 더 감정 이입이 되었다. 매일 밤 잠이 들 때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가 죽으면 엄마 잃은 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이 슬픔만은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나의 아버지의 슬픔도 떠올려본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집안이 풍지박살이 난 탓에 뒤늦게 노총각이 되어 결혼을 했다. 그래도 딸 아들 하나씩 낳고 남들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남들 부럽지 않게 살았다. 아이들이 다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아내가 암에 걸렸고 3년을 투병하다 결국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내성적이었던 아버지는 그 모든 눈물을 술로 들이켰다. 밖으로 쏟아내야 할 슬픔을 제 안으로 들이붓고 또 부었다. 그리고 결국 그 가득 찬 술의 파도가 아버지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매일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어린 나는 어른이 되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누군가와 같이 즐겁게 마시는 날도 많았지만, 혼자 내 슬픔을 마시는 밤도 꽤 길었다.






9월 1일, 겨울이 끝났다, 아니 끝나야 했다. 그러나 멜버른 하늘은 아직도 흐렸다. 비가 올 듯 말 듯. 이제 그만 겨울잠을 끝내고픈 나의 의지는 여전히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 며칠 후 의사 처방을 받아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약을 먹기 시작했다. '뿅' 하며 용수철이 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컬러풀한 색깔들이 보였고, 아침에 눈 뜨는 일이 힘들지 않았고, 사고 싶은 물건들이 다 생겼다. 그리고 말문이 트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쳐났다. 할 수 있는 말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두 달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남편에게 시시콜콜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더니 남편은 이제 그만 시끄럽다고 했다. 120일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고 알람이 울리는 브런치 앱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겨울 카톡 답문 하나 보내기가 힘겨웠던 내가 지금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슬픔, 그 슬픔을 술로 삭이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던 슬픔.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그 슬픔의 유산으로 내 마음 혹은 머릿속 어딘가 아주 오래 고장이 나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일 년 가까이 금주기를 가지면서 내 고질병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알코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또다시 육아 스트레스와 타지에서의 향수병을 술로 풀기 시작했고. 또 한 번 거센 우울의 파도를 맞고 이렇게 석 달간 겨울잠을 잔 것이다. '엄마! 일어나. 이제 봄이 왔어.' 아이는 아직 봄이 무엇인지, 봄이라는 말도 알지 못하지만, 이제 내 속에 알람이 봄을 울리고 있다. 올봄에도 아이에게 봄을 알려주리라, 나리 달래 색들을 보여주고, 가벼워진 바람 소리를 듣게 하고, 새초롬한 꽃내음을 맡게 하리라. 내를 깨워준 고마운 나의 아이에게 나는 기쁘고 즐거운 봄을 물려주리라.



오늘 현재 멜버른의 나리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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