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감정을 표현하는게 어려워졌다. 내가 지금 웃고 있는게 진짜 웃겨서 웃는건지, 웃어야 해서 웃는건지 구분하는것 조차 쉽지 않았다. 감정 표현 중에서도 가장 난감한건 화내는거였다. 잘 화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고 그냥 속으로 삭히게 되더라. 화가 나도 생각이 돌고 돌아 나만 잘했어도, 내가 그러지만 않았어도...같은 생각에 화를 낼 의미가 없어졌다. 혹은 정말 화내야 할 일, 예를 들어 만나던 사람이 바람피는걸 목격했다거나 해도 마음이 차게 식을 뿐 불같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한번은 우리가 아주 신인이었던 시절, 방송국에서 말도 안되는 요구를 했던적이 있다. 뮤지션의 상황을 잘 모른채 방송 진행만 염두에 둔 요구였다. 문자로 말이 안통하니 제작진이 전화를 했다. 한참 신인일때였으니까 당연히 편한 말투에 ‘너희는 방송을 모르니까’가 전제로 깔려있는 대화였다. 전화를 끊고 조금 생각을 한 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사실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이번엔 진짜로 화가 났다. 그런데 어떻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는거다. 제대로 화를 내 본 적이 없으니까. 억울하고 분한데 이미 끊은 전화를 붙잡고 소리를 지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원통한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가끔은 우는것도 호사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밥그릇 한가득 밥을 퍼서 꾸역 꾸역 먹으며 다짐 했다. 시간이 지나 좋은 선배 뮤지션이 되면 같은 상황에 놓인 후배들에게 이럴때는 화를 내도 되는거라고 얘기해주자고. 정작 나는 화내는 법을 몰라 밥이나 열심히 먹었지만 잘 화내는 방법을 알면 나처럼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화내는 대신 우는건 이미 목적을 잃어버린 눈물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눈물이 어디 그렇게 쉽게 떨어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