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북촌에서 만났어요. 오래전 고등학교였다는 도서관 올라가는 길에서 만났지요. 그녀는 커트머리에 작은 귀걸이를 했어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백팩을 메고 있었죠. 그녀를 슬쩍 봤었는데 상기된 표정이었어요. 뭔가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랄까 그런 게 보이는 표정이었죠. 우리의 만남은 거기서 끝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녀가 또 찾아왔어요. 다음 날 저녁 무렵이었어요. 6시가 넘었나 그랬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그녀는 나를 오래 살폈어요. 망설이는 것 같았죠. 오른쪽 15도 각도에서 보고, 왼쪽 45도 각도에서 보았어요. 그리고 나를 껴 봤어요. 또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드디어 나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나 봐요. 결혼반지도 잘 안 끼던 손이라고 했는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제 그녀와 함께 있어요.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있어요. 그녀는 아침에 외출할 때 나를 끼고, 저녁에 나를 작은 함에 넣어둬요. 책 읽을 때, 노트북으로 타자를 칠 때 반짝이는 나를 슬쩍 보아요. 그리고 나를 한번 쓱 만지고 자리를 잡아줘요. 반짝이는 나와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은가 봐요.
어제, 그녀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나무 사이 반짝이는 빛을 찍었어요. 그리고 미소 지었어요. 나는 그런 반짝이는 순간에 그녀와 함께 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