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극복해야 한다.
종 모양을 닮은 알림 싸인을 눌러보니
내가 60일 동안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고, 브런치는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문구가 떠 있다.
상투적이지만 친절한 표현 속에 격려와 재촉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처음 브런치에 가입할 때 생각이 난다. 미리 심사를 받아야 하는 가입절차는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했다. 혹시나 심사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며칠 조마조마했던 기억도 난다. 한동안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쓰려했다. 매거진, 브런치 북 같은 시스템은 지금은 볼품없는 생각이라도 언젠가 그럴듯한 성취물로 완성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알고리즘의 장난이었는지 모르지만, 글 하나가 다음 메인화면에 걸리면서 조회수 폭발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날 나의 뇌는 도파민 샤워를 경험했다. 이런 성취감은 달갑지 않은 자만심도 함께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작가,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 말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꺼운 학위 논문을 썼고, 정식 출판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동안 쓴 단행 논문과 보고서 목록은 마우스 스크롤을 몇 번 해야 다 훑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의도적 표절을 한 적이 없고, 주제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랑스럽지는 못해도 크게 망신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브런치 글도 논문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쓰다가 멈춘 논문파일이 폴더에 쌓여간다. 작가의 서랍도 마찬가지다. 조물딱 거리다가 물러 터진 복숭아가 딱 내 글의 상태다. 글쓰기 매너리즘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거의 매일, 매 순간 고민하고 있다. 불편함을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탓인지,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분석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의식을 반복해서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전히 나의 글은 불만족스럽고, '안 되는 이유'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극복해야 한다. 언젠가 생각은 명확하고, 주장은 신선하며, 논리는 공감할 수 있고, 결론은 도움이 되는 그런 멋진 글을 쓸 날이 올 것이다. 오늘 나의 고통은 조금 덜 부끄러운 글을 쓰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었다고 추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