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대하는 자세
어제 친한 선배와 술을 마셨다. 행사에 초대받아서 간 적은 있지만 밤에 술을 마시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렜다. (두근두근!)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 같다. 사적으로 종종 만나지만 어제는 우리가 함께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언제든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맞닥뜨리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 부담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다녀왔다. 그와 봄에서 겨울까지 1년을 만났다. 나는 덕분에 집에서 나와 봄의 청량함, 여름의 눈부신 빛줄기를 느끼고, 가을의 서늘함, 겨울의 황량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여름 에어컨을 벗어나 산을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게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 주었으며, 사람과 만날 때는 항상 모자람 없이 관계를 살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해 줬다.
마치 크게 좋아하는 줄 몰랐던 사람에게 실연당한 기분이다.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했었나?' 그냥 가볍게 만나는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부 사정상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 가슴이 허전했다.
어른이 되어도 이별은 어렵다. 생각해 보면 난 어렸을 때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났을 때도 실연당한 것처럼 힘들어했다. 초등학생 때 즐겨보던 대하 사극 드라마가 끝나서 운 적도 있으며, 대학생 때도 미국드라마 <프렌즈> 시즌 10까지 다 보고 끝나서 너무 서운해 며칠간 그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도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슬램덩크>를 보고 나서도 섭섭했다. 왜 이다음 이야기가 없는 걸까. 왜 우리는 갑자기 이별해야 하는 걸까. 강백호가 주장이 되는 모습까지 그려줘도 되지 않을까.
이런 성향 탓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의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일 테니까. 그보다 슬픈 건 혼자이기에 누군가의 부재를 느낄 필요가 없거나, 누군가 세상을 떠났어도 심리적 타격감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메말랐거나 친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아픔을 자주 겪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많이 만들지는 말자. 대신 소수지만 그들이 떠났을 때 진심이 담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돈독한 관계를 만들자. 많이 슬퍼하되 오래 슬퍼하지는 말고 좋은 기억을 가슴에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