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를 수석교사 생활 리뷰
교사는 수업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지난 세기말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에 깔리고, 학교의 각종 사무가 전산화되면서 단위학교와 개인 교사들에게 부여된 일은 그 이전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증가했다. 대부분의 성인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때와 지금의 학교, 그리고 교사가 하는 일이나 책임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국가와 사회가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엄청나게 늘었음에도, 교사는 본질적으로 수업을 하는 사람이며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진정으로 교사다운 교사이다. 수업은 그 안에 교과교육과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포함하고 있으니, 수업을 잘한다는 것은 유명 강사처럼 지식에 대한 설명을 맛깔나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전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학생들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사의 존재 가치를 수업에 두었는데, 수업을 적게 하는 비담임교사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째 영 켕긴다.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적게 하는 비담임교사는 누구인가? 상담교사나 보건교사, 영양교사, 사서교사 등의 비교과교사는 여기에서 빼놓아야 할 것 같다. 교과가 없기 때문에, 앞서 말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는 건, 학교 현장에서 정말 보기 드문 수석교사이다. 경기도의 경우, 2024년을 기준으로 초등학교 수석교사의 수가 100명이 채 안 되니, 그야말로 멸종위기종에 가깝다.
수석교사는 교사들의 평균 수업시수의 1/2 이하로 수업 시수가 적다. 일반적으로 8~10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데, 많은 경우 14시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많은 수업을 하는 사례의 경우 학교 내 업무나 책임 정도를 크게 감경하는 듯하다. 또한, 수석교사는 담임을 면제한다. 그런데 담임을 면제한다는 표현이 우스운 것이, 대부분의 수석교사가 담임 시절 담임교사-학생의 안락한 관계를 통해 좋은 수업을 실천했었으며, 오히려 '내 새끼'가 아닌 학생들과의 몇 시간 안 되는 수업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담임을 안 하게 된 상황이 마치 특혜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다.
어쨌든, 수업을 적게 하는 비담임 교사로서의 수석교사는 좋은 점이 많다. 내 자식은 없지만 배정된 수업 시수가 적어서 시간이 많고, 담임의 고유 업무(자잘하게 발생하는 학생과 학부모 관리, 담임교사로서의 각종 행정 사무)가 없다. 시간표 편성에 따라 수업이 아예 없는 날도 있어서 수업하기도 아이들 돌보기도 싫은(?) 교사에게는 수석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따박따박 월급은 들어온다. 다른 경로에 있는 교감과 교장이 행정적 혹은 법적 책임이 막중한 것에 비해, 수석교사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교육계의 꿀보직이다.
... 여기까지가 수석교사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수석교사에 대한 인식이다. 별 하는 일 없이 국가의 세금을 축내는 꼰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는 경험한 수준에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교직 평생을 '교실이 대한민국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온 교사라면 수석교사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수석교사로서 생활을 해보니 그다지 만만치 않다. 작년까지 담임교사로서 연구부장으로 지낸 것과 비교하면 업무강도가 높았다. 수업은 주당 11~12차시를 받았는데, 여기저기 신경 쓸게 많았고, 지도나 조언과 같이 참견할 것들이 많았다. 제일 피로도가 높은 부분은 '피드백 지옥'에 빠져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수석교사가 되어서 좋은 점이 있긴 한가? 나는 교사인 동시에 교사들이 만든 학교 문화를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교직 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나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가 어쩌다가 자기가 하는 일이 좋다고 이야기하냐? 내가 너를 오래 지켜봤는데, 참 별소리를 다 한다."
그렇다! 수석교사를 하면 좋은 것이 분명히 있다. 내가 교사와 학교의 문화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교사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주변을 돕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선후배들과 학교 풍토가 달라지지 않는 것에 크게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석교사라는 새로운 직위(교사와 직위가 다르다!)를 받고 새로운 업무 조건에 일을 하면서 주변을 돕는 것이 이전에 교사로서 돕는 것과 달랐다. 이전보다 훨씬 깊고 넓은 피드백의 늪에 빠졌지만 그래도 건지는 것이 많다. 전문성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정성 어린 도움에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선후배들이 많다는 점에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여전하지만, 도움에 효용을 느끼는 교사의 절대량은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도울 사람도 많아지고, 도움을 통해 교사로서의 삶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는 후배들이 많아졌다. 물론, 단순히 수업 시수가 줄고 담임을 안 해서 시간의 여유가 생긴 것으로 도움의 양과 질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수석교사라는 자리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태도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80여 건의 위촉과 표창, 20건이 넘는 논문, 박사학위보다 수석교사라는 직위의 힘이 더 컸다.
수석교사를 하면서 달라진 근무조건(수업 시간 단축, 담임 면제, 별도 공간의 제공)의 장점은 몇 가지 것들로 상쇄된다. 수업이 줄어들고 담임을 안 하면서 발생한 여유만큼 교내외의 장학과 교육청 행사, 교사에 대한 피드백과 상담, 교사 연수 등의 업무가 채워지면서 오히려 더 근무시간 외에 더 많은 시간을 학교의 일로 사용하게 되었다. 수석실을 따로 받았지만, 담임으로서 교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수석실을 찾아오고, 때로는 사기진작을 위해 일부러 사람을 부른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대단히 많은 시간을 쓰고, 효과적으로 잘 돕기 위해 계속 공부한다.
물론, 자신의 전문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석교사의 이런 과업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수석교사가 꿀보직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교사가 도움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며, 대체로 도움을 적극적으로 거절하는 사람들이다. 경험적으로, 교실에 갇힌 교사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오랜 도전과 좌절, 그로 인한 교직 사회에 대한 지독한 냉소는 비전문적임에도 전문가임을 확신하는 교사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함께하자고 했던 겸손과 성찰, 진보는 그들에게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제 살을 깎아 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부류의 교사들과의 물과 기름 같은 대립적인 관계는 수석교사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 관계를 유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수석교사가 좋은 것인지 아닌 지는 판단하기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수석교사가 논다고, 그래서 익명에 기대어 저주하는 교사들을 많이 보았다. 근데 아마 그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들려주면, 이 꿀보직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주요 보직(교무/연구부장)을 하며 담임교사로 지내는 것보다 더 많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정년까지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뚜렷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수업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교사에게 교육 역량을 한 단계 성장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보람이 있다. 수석교사의 일은 요즘의 학교 문화에서 학교에 있는 어떤 직위에 있는 교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동료교사의 교육 실천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한 단계 위로 성장할 수 있는 스캐폴딩이 된다는 것, 이것이 수업을 적게 하고 담임을 안 하는 수석교사를 하면 좋은 점이다. 뭐, 누군가의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남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썩히는 것이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것이 수석교사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삶(교사로서의 삶)의 무대(교실)에서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수석교사의 일이 가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