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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임 Jan 12. 2024

현존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소설가 김영하는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이 문장에는 두 꺼풀의 암시가 겹쳐 있다. 삶은 생각보다 수정에 관대하며 우리는 우리가 변하는 중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부러 틀어질 것을 긍정하는 일이 여행의 다른 말이 될 수 있다면 인도 행 목적은 확실했다. 몇 년간 한 길만을 고집했던 나는 비상구를 찾고 싶었다. 다른 행로에 대한 힌트말이다. 마크 트웨인조차 묘사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놀라운 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이 나라에서는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싯다르타가 마침내 부처가 된 이곳에서, 명상과 요가의 성지에서, 히말라야를 머리에 이고 있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이 땅에서 분명히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대를 안고 배낭을 멨다.


과격하게 요약하자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구하러 가는 여정, 답을 찾았을까. 웃기게도 저 질문은 금세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당장 어디서 잘지 정하는 게 급했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에 무엇을 타고 갈지 고민해야 했다. 사기꾼인지 선량한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하루의 흥망을 쥐고 있는 일 중 하나였고, 어떻게 하면 흥정이 쉽게 먹힐지 궁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떠도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거창한 질문 따위는 들어설 틈 없는 하루하루. 일기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저울이 핑핑 돌아갈 만큼 꽉 찬 나날들. 그날들은 어땠냐면, 미치도록 더운 낮에 식당을 전전하다 마침내 마신 맥주 한 모금에 짜릿하게 행복했다. 어떤 이들과 잠깐 함께 했을 뿐인데도 다시 만날 날이 과연 올까 가늠해 보다 울적했고, 사막에 누워 달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응시하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생각했다. 그저 보이는 걸 응시하고, 느껴지는 걸 감각하고, 들리는 걸 귀 담았던 시간의 연쇄. 그 속에 사니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숨 멈춰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현존한 적 또한 없었다는 걸.


<싯다르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는 가시적인 것을 보고 인식하였으며,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피안의 세계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중략) 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이처럼 미몽에서 깨어나서, 이처럼 아무 불신감도 없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인도에서 나는 현재를 담보 삼아 미래를 기대하던 그간을 뒤로하고 문자 그대로의 지금을 살아냈었다. 현재를 거름망으로 걸러내지 않았으나 결코 내일이 무겁지 않았다. 보다 가볍게 떠돌았다. 이것은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일이 정말 맞았다.


현재를 온전히 살 거라 다짐하려 이렇게 글 쓰지만 어느 순간 습관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복잡하고 모호한 물음을 붙잡고 있을 게 뻔하다. 앞으로도 놓지 못해 살 테지만 그래도 이제는 질문 끝에 이 정도는 덧붙일 수 있으리라. '시선을 눈앞으로 옮겼나. 그럼 여기,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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