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대한 카인의 반항은 당연하다.
『카인』 / 주제 사라마구/정영목 옮김/해냄출판사 / 2015
신의 존재를 기록한 책
신이 스스로를 기록할 순 없다. 인간이 신의 말씀을 듣고 기록해야 한다. 수많은 신의 대변인과 선지자들이 연작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 성경이다. 따라서 글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기록은 몇 대를 걸쳐 말로 전달되는 동안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 하나님의 말씀하신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부족한 소통으로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의 불경스러운 행동에 정기적으로 나타나 존재함을 보이고 징벌해야 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는 작업부터 계속 인간에 대한 시험을 준비했다. 결정적인 이유를 만들어 흔들고, 심술궂게 내치고, 거의 멸종의 순간까지 몰고 가는 일을 반복한다. 신의 분노와 존재감을 보이기 위한 사건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에 반응하듯 인간의 반항과 일탈 또한 점점 무모해졌다.
20세기가 끝나가던 1998년,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 "카인"을 통해 이 오래된 다툼을 다시 한번 조망한다. 널리 알려진 "눈먼/뜬 자들의 도시"와 같은 작품에서 훌륭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고 노벨상을 수상한 대작가가 하나님과 대립할 화자로 내세운 것은 성경 속에 최초의 살인자로 규정된 '카인'이었다. 아담과 하와의 큰 아들, 동생 아벨을 죽인 자, 신에게 버림받고 추방된 인간을 다시 성경의 주요 사건의 씬스틸러로 등장시킨다.
그렇다. "예수 복음" (1991) 같은 작품에서 신약에 구현된 신과 인간의 관계, 세계관에 대해 비판한 작가의 태도를 알고 있다면 그가 '카인'이라는 내레이터를 고용하여 하려는 이야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신은 존재하고 인간은 투덜거린다.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에덴에서 부모들이 추방된 이유를 아는 두 아들은 여호와가 두려웠다. 부모가 들려주는 옛 사건을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신에게 잘 보이지 못하면 힘든 고난에 빠지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첫 번째 제물을 인정받지 못한 카인은 응답하지 않는 신이 야속했고 놀리는 동생이 얄미웠다. 신에 대한 복수의 심정으로 동생을 죽였다. 신이 동생의 행방을 물었을 때 "내가 그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며 반항했다. 그것은 부모에게 관심받고 싶은 철부지 아이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이 자신의 살인을 막지 않은 것은 창조주의 소임을 다한 것이 아니므로 공범이라며 공격하는 카인을 추방함으로써 신은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했다. 카인에 대한 형벌로 다른 아무도 그를 해 치치 못한다는 저주를 내렸다. 죽지도 못하고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카인의 모습은 매일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나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를 닮았다. 그렇게 신을 기만한 인간들은 죽지 않고 계속 시달려야 하는 운명에 놓였고, 사실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시달리는 게 인간 아닌가.
카인은 성경의 길고 긴 이야기 중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불쑥불쑥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주요 사건. 바벨탑 건설 현장에서 마지막 순간의 추락을 목격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일,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복하는 현장에도 있다. 모든 피와 학살의 현장에서 계속 신을 원망한다. 죄 없는 소돔의 아이들까지 죽여야 했던 이유를 캐묻는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한 일이나, 욥이 시련을 겪는 현장에도 카인이 함께한다. 이미 충분히 검증된 그들의 믿음마저 시험하는 신을 비난한다. 계속 반항하던 녀석은 드디어 노아의 방주에서 신의 뜻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다. 노아 일족을 모두 죽였다. 신이 계획한 새로운 인간은 노아의 후손이 아니라 카인의 후손들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이렇게 피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신과 싸우는 것은 의미 없다.
인간에게 배경도 모르는 미션을 주고 설명하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그 결과에 노여워하며 책망하고 학대하는 신을 비난하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그러니까 신이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다면 그건 신이 아니다. 카인 도 그것을 잘 안다. 알면서도 자신이 동생을 죽이게 된 것도 신의 뜻이었으니 공동 책임이라고 우긴다. 죽지도 못하는 벌을 받은 카인은 계속 신을 욕하고 다니면서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신과 논쟁 중일 것이다.
20세기 두 번의 큰 전쟁과 여기저기서 벌어졌던 인종학살 장면을 되돌아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학살은 작은 소동일 뿐이었다. 그 현장에도 카인이 있어 잠도 안 자고 신과 책임 공방을 했겠지만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신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책을 좀 더 희망적으로 읽어야 한다. 사라마구의 발칙하고 불경스러운 상상 덕분에 인류가 좀 더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 21세기의 모습은 좀 더 유쾌했으면 좋겠다고. 신에게 의존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대화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