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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키 Jun 07. 2024

0교시, 마음의 시간

세 번의 수능 그리고 마침표

 다 왔네. 학교 정문에 일렬로 늘어선 자동차, 학생 그리고 학부모. 엄마, 나 여기서 내릴게. 그래, 우리 딸 파이팅! 문을 열고 도시락을 챙겨 들고 내렸다. 서른 살 먹은 딸을 수능 고사장까지 데려다주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기 전에 고개를 숙여 손을 흔들어줬다. 더 오랫동안 그녀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교실로 들어서면 그곳에서 난 오로지 일(1)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해오지 않았던 간에 수험장에 입실한 이후부터는 나 하나일 뿐이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리고 친구도 없다. 얘들아, 나는 서른인데, 그래도 무섭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게 아니라고. 물론 빨리 끝내는 게 좋긴 하지만.


 일곱 시인데도 교실에는 학생들이 많다. 2년 전과는 또 다르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한 수능 유튜버의 '수능 시험 시뮬레이션' 영상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듯했다. 아니, 시험을 보는 데 일찍 와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 또래이거나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십 대의 학생들에게는 '일찍'이 어느 정도의 '일찍' 이어야 하며, 밥의 '적당히'는 어느 정도의 '적당히'인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럼 그러겠지. 요즘 아이들이란. 그런데 알아둘 것. 당신도, 나도 그땐 그랬다. 우리도 현실을 마주해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지 않은가!


 자리에 앉아서 안은문장과 안긴문장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국문과가 그게 어려워? 국어를 전공했어도 어려운 게 있다. 이건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어쨌든 100% 시험에 나오는 부분이지만, 알고 있어도 틀리니 속이 뒤집어진다. 몰라서도 걸려 넘어지고, 알아도 넘어지는 것이 인생인가요? 가보지 않고도 아는 성인군자였으면 참 좋으련만. 


 어법을 체크했다면 독서 지문으로 예열을 한다. 재작년에는 경제 지문이 나왔고, 작년에는 법 지문이 나왔으니까 올해는 경제 지문이 나올 거야. 학원가에서는 그렇게 예측했지만, 갑작스럽게 시험 운영 내용이 바뀌면서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래, 뭐가 나오든 다 읽어주겠어!


 삼 년. 어두웠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새벽 공부를 시작했고, 재수학원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 시까지 공부를 했다. 주말은 당연히 없었다. 해를 못 보니까 말 그대로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4년제 대학에서 국문과를 졸업하고 기획자로 근무하던 내가 약학대학을 가고 싶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무모하리만큼 목표가 높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지.


 어느새 책상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수능 샤프와 컴퓨터용 사인펜 그리고 지우개가 놓여있다. 이번에는 연노란색 샤프네. 그걸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공부를 하면서 얻은 질병이 있다면 그건 '눈물병'이다. 마음이 너덜너덜해 있으면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부터 고인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삶에서 삼 년은 정말 작은 시간이다. 그렇다고 이 시험을 망친다고 살아갈 방법이 영영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간절하게 되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직감하는 그 순간의 마음을 혹시 아는가? 이미 떠나간 님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제발 받아달라고 외치는 그 마음.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의 공부는 집착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인 눈물을 훔쳤다. 수능을 처음 보는 열아홉 살도 아니고 서른도 넘은 애가 질질 짜고 있는 건 너무 구차하게 보이니까. 

 

 열심히 노력한다고 영웅이 되지 않았고, 간절히 바란다고 요정 할머니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동화의 세계가 아니었다. 실패했고 꺾였다.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이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야. 끝나면 우리 이제 모든 걸 놓아주자. 시험지를 배포하라는 종이 울렸다. 뿌-뿌-. 컴퓨터용 사인펜을 집어 들었다. 마침표를 찍으러 간다. 



수능 샤프 모음. 올해는 과연 어떤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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