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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Dec 28. 2023

손 안의 작은 세계로의 회귀

민음사 탐구시리즈(민음사)

‘종이책은 가지고 다니기에 너무 무겁고 불편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책을 얼핏 책을 안 읽는 변명 아닌 변명처럼도 들리지만 이는 어느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이미 세상은 200g도 채 안 되는 한 손 안에 잡히는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어디든 접속과 동시에 그곳에 간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 나게 그리고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현재 A사 베스트셀러 1위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란 책인데, 이 책만 해도 크기도 무게도 스마트폰의 두 배 정도가 된다(135밀리미터 x210밀리미터, 360쪽, 468g). 외출 시 짐을 챙길 때 스마트폰과 책,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먼저 챙기고 또 나중에 챙길 것일까. 답은 금방 나온다. 언제 어디서도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의 완승이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를 맞춰서일까. 스마트한 21세기의 책들은 대체로 정말 작다. 한국에서 기본 판형(책의 크기)으로 일컬어지던 신국판 판형이 가로 152 밀리미터에 세로 224 밀리미터인데, 이 또한 크다고만 볼 판형은 아니었지만 이 신국판의 변형, 그러니까 이 신국판의 비율은 가져오되 대체로 크기의 판형이 늘어나는 추세다. 문서 종이로 많이 쓰는 A4종이의 반절 정도인 A5(148밀리미터 x210밀리미터)나 또 거기에 반절인 A6(105밀리미터 x148밀리미터)의 사이에서 조정된 판형이 그 흐름 중 하나다. 이런 작은 판형은 일반 (성인) 단행본에서도 많이 시도되고 문고판이라고도 인식됐던 시리즈물에도 많이 적용돼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런 흐름은 그 옛날 **문고들로 대표되던 문고판으로의 회귀, 손 안의 세계로의 복귀 또는 왕좌를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야망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흐름에서 눈에 띄는 시리즈가 있다. 민음사 탐구 시리즈가 그것이다. 가로는 10센티미터, 그러니까 100 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94 밀리미터에 세로는 164 밀리미터이다. 한눈에도 작은 사이즈에 얇은 볼륨으로 그립감이 스마트폰에 뒤지지 않는다. 실제 무게도 140~300g 정도로 앞서 언급한 책 보다 훨씬 가볍고 오히려 스마트폰의 무게와 가깝다. 주제도 이런 외형에 맞춰 재난, 이미지, 미디어 등 지금 당장 이 시대에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주를 이루고 어떤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는 화두를 던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크레마 카르타g(전자책 기기), 민음사 탐구시리즈 중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스마트폰. 크기에서 큰 차이가 없다.
독립출판은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책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한 경제적인 사이즈를 추구하는데, 왼쪽이 그 사례다. 이런 독립 출판물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면당 적지 않은 원고량이 있다. 이를 잘 읽히게 해야 판형도 존재의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다.


분량이 많지 않아 보이고 실제로 완독 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편인데, 이는 현시대를 반영한 주제가 마치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 외형이 이를 받쳐줘 읽는데 속도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원고가 적어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일반 단행본에 비해 적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적다고도 할 수도 없다. 이 시리즈 중 188페이지의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의 경우 한 페이지에 약 500~600자가 넘는 글자가 들어가고(가로 20~25자 x세로 22줄), 이를 188페이지로 환산했을 때 약 원고지 500매 내외의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주제를 원고지 500매 정도의 글로 빠르게 읽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시리즈는 무리 없이 잘 읽힌다. 좋은 글과 함께 형식, 디자인, 편집이 따라간 결과로 보인다.


여러모로 읽기 좋은 시리즈의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독자는 빠르게 읽고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질 수 있지만 그 경험을 하기 위해선 또 그만큼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주르륵 쌓아놓고 한 권씩 해치우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따라 주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어쩐지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만드는 입장에서 고기 한 근이요, 두 근이요~처럼 일괄적이고 단순하게 그리고 싸게 책값을 매길 수도 없다. 양쪽의 입장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 자체는 굉장히 신선해 보인다. 독자에게 익숙한 감각을 찾아 책을 만드는 것. 그리고 어쩌면 예전부터 해 온 문고판이라는 역사를 복원하는 일도 된다. 새롭고도 낯설지 않은 이런 시도가 반갑다. 앞으로도 책들에 많은 시도와 도전이 있기를. 그리고 대박도 함께!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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