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민 Jan 17. 2024

그 시절 성경책 종이는 왜?

성경, 수학의 **, ** 종합영어

“그런데, 그때 그거 어쩐지 이상했지 않아?”라고 어린 시절의 내가 의문을 가진 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딱히 의문을 안 가졌을 수도 있을 그런 책. 하지만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왜 그렇게 신경 쓰였는지 왜 그런 모양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의문은 조금씩 풀려갔다. 오늘은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책의 종류는 약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성경, 찬송가(이하 성경), 두 번째는 수학의 **, 세 번째는 **종합영어였다.


온 국민 중 누구라도 이 셋 중 하나는 곁에 두고 오래오래 들춰본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 모양새는 확연히 달랐다. 먼저 첫 번째인 성경의 경우 책등을 제외한 3면에 마치 코팅을 한 듯 금색이나 적색으로 인쇄가 돼 있었다. 주로 금색은 유광이었고 적색은 무광이었다. 책의 성격상 종이가 매우 얇고(박엽지, 약 50g 내외. 일반 단행본 용지가 80~100g인 것을 감안하면 그 반 정도) 자주 들춰봐야 했기에 가능하면 안 찢어지게 좋았기에 하나의 막을 덧씌운 걸로 보인다. 거기에 장식적인 효과가 있으니 일석이조. 여기에 또 하나의 가정을 추가해 보자면, 적색은 이스라엘인들이 약 4백 년 동안의 애굽의 핍박을 피해 나올 때 성경의 말씀을 따라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서 그 심판을 면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대한 은유라고도 보이고, 금색은 겉표지의 금박과 톤 앤 매너를 맞춘 거라 보인다.


표지로 넘어가면 성경 표지에 쓴 가죽, 종이는 많았으나 어렸던 우리가 쓰는 성경책은 (아마도 단가가 낮은) 종이로 만든 것이 주였는데, 누가 봐도 가죽은 아니지만 가죽 느낌을 물씬 가진 레더텍스(Leather tex, 가죽 느낌의 텍스쳐) 류의 종이를 사용한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정말 이해가 안 됐던 것은 면지였다. 그중에서도 색. 이 면지로 사용된 종이는 역시 가죽 느낌이 나는 ‘레자크(lethack)’ 류의 종이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 성경 면지에는(지금도 다소 유효) 결이 있는 종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앞서 이유와 같은 이유로 결이 있어야 외부 충격이 가했을 때 그 종이 결을 따라 유연하게 갈라지면서도 티가 안 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능적으로 문제는 전혀 없었던 기억이 나지만 어쩐지 검은색 가죽 표지에 유광 금박인쇄, 거기에 사하라색(노란 모래색)이나 연갈색(ginger), 빨간색, 진연두색 등의 면지는 어딘가 조화가 뭔가 조화롭지 않고 생경하게 느껴지면서 한 권의 책 안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 톤 앤 매너를 맞춰보겠다고 검은색 색연필로 칠해보기도 했지만 엉성하게 칠해져 그 종이결의 질감만 더 안 좋게 살아나 더더욱 이상한 꼴이 되어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충분히 기능에 충실하더라도, 어린이들이 들고 다녀고 스스로 충분히 ‘간지 난다(?)’라는 느낌의 성경을 원했는데 그 부분이 상당히 아쉬웠다. 그래서 비록 실패했지만 리폼해보려 하기도 했던 것이고(이런 이유로 색연필보다는 마커펜이 차라리 낫다).


출처: 삼화페이퍼(https://samwhapaper.com/product/samwhapaper/embossed)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는 ‘수학의 **’과 ‘**종합영어’이다. 둘 다 국민 자습, 학습서였으나 그 모양은 수학과 영어, 문과와 이과만큼 달랐다. 기능적으로 따지고 보면 넓은 면을 사용해 내용을 압축하고 무게감도 줄이는 게 낫다. 하지만 ‘수학의 **’은 그런 생각보다는 조금 작은 약 152*223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 판형은 그렇다! 국민 판형 신국판이다. 일반 단행본 사이즈와 같은 것이다. 신국판은 접지할 때 경제적이므로 종이 수급이 어려웠을 그 옛날에 종이를 가장 경제적으로 쓰는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내용이라도 한 페이지 넘기는 것보다 열 페이지는 넘겨줘야 어딘가 배운 것 같은 성취감이 들 테니 이것도 일석이조. 내지의 구성 또한 책의 성격에 맞춰 한 페이지 안에 원리를 요약해서 구성했으니 구성적인 면에도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표지는 단계에 따라 적색이나 초록색으로 구분하고 그 위에 유광 금박을 찍었다. 이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추정되는데, 인쇄 환경의 변화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인쇄’보다 많은 인쇄소에서 진행을 해도 비교적 동일한 결과물이 나오는(나올 수밖에 없는) 금박 인쇄는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이는 ‘박’의 과정 덕분에 가능한 것인데 그런데 쉽게 말해, 판화에서 그림이나 글자의 판같은 것을 만들어 쓰는 것처럼 ‘박’에서는 사용할 그림, 글자를 동 또는 철로 판을 만든다(동판, 철판), 여기에 이미 전국에 유통되고 있는 동일한 금박지를 붙여 녹이듯 누르는 것으로 사실상 다른 결과가 나오기가 더 힘들다. 관리하기 편하고 게다가 ‘금’이라고 하면 어딘가 있어 보이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출처: https://brunch.co.kr/@hanschloejun/90



이에 반해 ‘**종합영어’는 같은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표지부터 다르다. 성경과 비슷한 이유로 질감 있는 종이에 금박을 입힌 ‘수학의 **’과 달리 ‘**종합영어’는 단계에 따라 색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PVC 소재를 사용했다. PVC라 하면, 일반적으로 비닐커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Polyvinyl Chloride의 약자로 비닐과 플라스틱의 성질을 ‘다소’ 가진 합성 소재이다. 이 소재부터 그 시대의 것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 비닐이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새로운 소재는 어딘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대하는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반영된 것은 아닐까. 거기에다 본문 안에는 별색 인쇄를 시도하여 흑백 일변도의 시장과는 차별화를 뒀다. 일반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학습, 공부를 목표로 하고 있을 때는 색상으로 주요 부분을 환기시켜 주면 아무래도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판형도 약 185*250 정도로 규격인 B5에 가깝긴 하지만(경제적인 이유로 규격은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규격 외 판형, 그러니까 종이 로스[남아서 버리는 종이]는 상상도 못 할 일) 다소 크다. 생경한 언어를 천천히 그러나 차분히 학습하라는 배려는 아니었을까.



출처: https://m.blog.naver.com/eng1588/40149336637


이 외에도 ‘우선순위 *단어, *숙어’ 시리즈의 경우, 외울 단어는 빨간 별색으로 인쇄해 강조도 하는 한편, 책과 함께 제공하는 빨간색 플라스틱판(사실은 칼라 필름, 이것도 PVC의 한 종류)을 이용하게 해 복습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어쩐지 이상했어…라고 시작해서 되짚어 본 것이지만 나름의 이유와 상황이 있었단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이건 백 퍼센트 나의 경험에 의한 뇌피셜을 동원한 추정이다. 하지만 그 시절 모두가 한정된 자원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디자이너적으로 생각해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상했고 최적은 아닐지 몰라도 최선의 선택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분들의 노고에 박수와 함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책과 함께 좋은 시절 보냈습니다.라고



*

100퍼센트 저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추측으로, 잘못된 부분이나 추가로 설명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추가로 조언 부탁드려요~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 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책이라는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