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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Jan 27. 2024

때론 구관이 명관

개정판과 표지 갈이

같은 책이지만 다른 책이 있다. 이는 몇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원저작권자의 판권이 소멸되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경우다. 주로 고전이 많고 해설, 번역하는 이에 따라 같은 글도 다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각 버전별로 보는 맛이 쏠쏠하다. (이런 이유로 고전별, 판본별, 시대별, 출판사별 등 여러 에디션이 쏟아져 나와 책 한 권으로 매대를 꾸밀 수 있을 정도다. 책 한 권으로 많은 종수를 발행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콘텐츠라도 독자의 니즈와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나름 좋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는 책을 수정해 재출간하는 개정판이 그것이다. 책은 처음 세상에 나오고(초판) 많은 독자를 만나면서 시간도 그만큼 흐른 게 된다. 그 시간 동안의 변화가 있다면 반영하고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고치는 과정을 거치는 게 개정판이다. 대부분 증쇄 과정에서 해결되기도 하지만 시대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야 하는 성격의 책의 경우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개정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때 고민되는 부분이 표지이다. 표지를 변경할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무언가 새로워짐을 공표하는데 겉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확실하게 눈에 띄는 게 없기 때문에 개정판의 표지 변경(표지 갈이)은 거의 공식처럼 이루어지기도 했다.


얼마 전 모 출판사가 한 책의 개정판을 내놓았다. 개정 전부터 빅히트는 아니어도 소소하게 많은 반응을 받았던 책이었고, 이전 책이 디자인이고 편집이고 책에 딱 맞게 잘 나왔던 상태라 개정된 후의 모습이 많이 기대됐다.


책은 나왔고 결과물을 보니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디자인한 책은 스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특유의 유니크함도 적절히 들어가 있었고 이전 디자인의 장점을 계승하듯 차용한 점도 좋았지만 어쩐지 초판의 느낌과는 묘하게 같지도 다르지도 않았다. 이 흐름은 본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바꾼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좋은 점도 분명 있다. 판형을 줄여 좀 더 임팩트 있게 화면 구성을 해 저자의 어조에 힘을 더한 점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런 변신은 이 책의 가치를 몰랐을 수도 있는 새로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을 처음 본 독자라면 분명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디자인적인 면에서 보면 개정 전이 좀 더 내 취향과 생각에 가까웠을 뿐이다.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개정을 결정하고 새로운 표지 시안 작업을 했는데, 담당자는 내게 되물었다. “이게 나쁜 건 아닌데, 좋긴 한데… 기존 것보다 어떤 면으로든 좋은 것 같지 않아. 기존 것이 충분히 좋다면 바꿀 이유가 있을까”


회사 입장에선 표지가 더 좋든 말든, 변화가 있는 새로운 표지를 선택을 하는 게 판매에 훨씬 이득이다. 하지만 이 건에 대해선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기존 것이 -이것도 내가 한 작업이긴 했지만- 충분히 좋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실제 작업자인 내가 선선히 동의했던 이유도 사실 같다. 좋은 걸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전 것으로 합시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더 좋은 시안이 나왔으면 베스트였겠지만 결과는 다소 아쉽게도 그랬다.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건 어쩐지 쉽지 않았지만 타인 통해 객관적으로 들으니 받아들이기 쉬워졌다.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 괜한 자존심이나 판매를 빙자한 각종 명분 등으로 최선이 있음에도 차선을 선택할 때도 있다. 그조차 나름의 배움이 있고, 차선을 선택함으로써 어떻게든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엔 공과 과가 결과로 남는다. 가능하다면 한 발 앞서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질이 일을 할 때는 필요하다. 이런 것은 얼마 전 있으면 출판계 표절 시비와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책 만드는 이들이 생각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당장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냉정을 찾고 판단하는 것. 망친 책, 실수한 책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한 것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되돌리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말이다.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 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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