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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Feb 05. 2024

디자인도 손맛이거늘

알고 싶다. 디자인 장인의 비법

보통 “디자인 일을 합니다”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이렇다. “오~ 그럼 그림 잘 그리겠네”

이 간단한 몇 마디 대화에서 디자인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오해를 알 수 있다.


‘디자인 = 미술과 비슷한 느낌 = 고로 그림(?)을 잘 그릴 것이다 [미술과 그림은 또 다른 개념이지만…] = 고로 디자인에 본인의 그림도 그릴 것이다 = 고로 꾸미는 기능을 구현함에 있어 만능일 것’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출처:두산동아백과)’라 묘사하며 ‘산업혁명 직후 순수미술에서 획득한 미술적 요소를 산업에 응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고 한다. 디자인의 중심이 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기능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고 그런 모든 니즈를 ‘종합’해 꼴을 꾸려나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어떤 특정한 한 재주가 뛰어나다기보다는 이 ‘꼴’에 필요하고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디자인) 완성해 나가는 것까지가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현재의 디자이너는 ‘총괄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구현해 나갈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였다고 본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크게 생각하느라 작은 것을 놓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작업의 단계에서도 드러난다. 어쨌든 디자인이란 게 미술은 아니라 하여도 재료를 기능에 맞게 쓸고 깎고 다듬어야 하는데 그 다듬는 일을 하는 거의 모든 과정이 컴퓨터를 통해 이뤄진다.


일단 나부터도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일단 컴퓨터부터 켠다. 그것으로 무엇이 되든 안되든 일단 켜고 시작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작업-자료 조사, 이미지 검색, 원고 읽기 등-이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연한 과정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어딘가 스스로도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미지를 직접 자르고 붙였다면 이젠 컴퓨터의 기능 몇 가지로 대신한다. 직접 한 것 같이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결과물로 모아 볼 때는 어쩐지 특유의 손맛은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손맛은 손가락 사이사이 어딘가로 흘러 나가 버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몇 가지 사례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일본의 전설적인 북디자이너로 알려진 키쿠치 노부요시의 디자인 작업을 3년 간 따라가며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책 종이 가위>이고, 이 외에도 몇 가지 손맛이 느껴지는 작업들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 작업들이 공개된 시간 차는 있었으나 공통점은 많은 부분을 손으로 직접 작업했거나, 디지털 작업에 일부 기대더라도 구상자체는 사람의 손과 머리를 먼저 거쳤다는 것이다. 일단 컴퓨터부터 켜고 보는 나와는 일의 방향성 자체가 반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결과 자체가 아주 다르다고 보이진 않았지만 디자인에 있어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디자인의 다양성 측면에서 방향성이 오로지 하나인 것보다는 여럿인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설령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 책 종이 가위>, 이 영화의 원제는 <つつんで、ひらいて>로 '싸매고 붙이고'로 디자인의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출처 및 저작권: 푸른숲 페이스북, 푸른숲 출판사. 마침 시침을 하듯 글자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이에 붉은 글자로 가독성과 함께 핏줄이 흐르는 듯한 느낌도 더했다.


출처 및 저작권: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한겨레출판), 작은 아씨들(아르테),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후마니타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미국판(스티그 라르손)


출처 및 저작권: <글자의 삼번요추> 심우진, 물고기. 구상한 것이 실제로 구현되기까지의 기록을 책날개에 담기도 했다. 책 날개에는 책 광고를 실는 보통과는 다소 다른 선택이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계에선 실험을 할 때, 한 번의 실험으로 원하는 단 하나의 결과를 얻는 것보단 실패하더라도 열 개, 백 개의 실패를 같이 얻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원하는 결과를 적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얻는 것, 그러니까 가성비가 높은 것보단 원하지 않았더라도 서로 다른 다양한 아홉 개, 구십구 개의 결과도 함께 얻는, 어쩌면 가성비가 매우 낮아도 다양한 비교군을 얻는 방식이 더 이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어쩐지 삶에 대한 지혜에도, 디자인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때론 굽이굽이 돌아가더라도 많은 것을 느끼며 생각하고 시도해 보는 것. 늘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이 컴퓨터를 켜고 똑같은 자료를 보며 생각하는 나에게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컴퓨터를 끄고 하나씩 끼적이고 싶어졌다. 더 아름답고 적합한 디자인을 위해 때론 돌아 돌아서 멋진 것을 찾아내고 싶어서.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 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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