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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25. 2022

희년에 걷는 코로나 순례길

#10

  산티아고 순례길은 몇 년 동안 공사 중이었다. 유럽이야, 적어도 수백 년 된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 때도 하는 공사라서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프랑스 시골의 어느 성당 지붕은 십 년에 한 번씩 이끼를 제거해야 하는데 무려 수 억이 든다고 한다. 한 번에 이끼를 벗길 수도 없어서 하루에 가로세로 몇 미터씩, 손으로 직접 긁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자기네 마을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끄러운 공사판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다. 작은 공사 소리에도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법원 소송까지 진행하는 우리나라 모습하고 매우 다르다.


  작년까지 찍은 순례자들 사진을 보면 온갖 길과 성당이 공사 가림막으로 가려져서 썩 이뻐 보이지 않았다. 사진 찍는데 진심을 담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이 된다. 나도 인생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진만큼은 아주 중요하게 찍으려고 노력한다. 인생 샷 하나 건져야, 나중에 추억을 되돌아보더라도 예쁜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순례길을 나중에 걸으려고 미뤄두고 있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옆동네나 마찬가지니까 일이 년 안에 공사가 끝나면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사는 2년 남짓한 시간에 걸쳐 2020년 말에 마무리했다. 이번에 순례길을 걷다가 안 사실인데 2021년 산티아고 희년을 경축하기 위해서 진행한 공사였다고 한다. 



  희년 禧年 Jubilee은 말 그대로 ‘기쁜 해’를 말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 번째 날에 쉬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일곱 번째 날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모든 노동을 중단했다. 이게 오늘날까지 이뤄지고 있는 안식일이다. 안식일을 년 단위로 확장시켜 일곱 해가 되었을 때 쉬는 것을 안식년, 거기에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한 숫자이기 때문에 일곱에 일곱을 곱해 사십구 년이 되었을 때 안식년을 보내고 그다음 해인 오십 번째 해엔 아주 성대하게 안식년을 보냈는데 이게 바로 희년이다. 희년에는 노예가 해방되고 죄에서 용서되는 등 종교적 윤리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게 가능하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희년의 의미 안에서 살게 하게끔 하려고 25년마다 보내고 있다. 그 외에도 특정한 주제와 함께 희년을 보내는 ‘특별 희년’을 추가로 기념하고 있다. 


  산티아고 희년은 ‘특별 희년’에 해당된다. 사도 야고보 축일인 7월 25일과 주일이 겹치는 해를 곧 산티아고 희년이며 보통 6년, 5년, 6년, 11년 간격으로 돌아온다. 2021년은 11년 만에 돌아온 희년이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희년을 보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2020년 초에 발병한 코로나 대유행으로 모든 항공길이 막히면서 행사조차 열기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안타까운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건지, 산티아고 희년을 2022년까지 연장했다. 


2021-2022 산티아고 희년 로고


  코로나 덕분에(?) 나는 새롭게 단장한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울퉁불퉁한 길은 평평하게 다져졌고 헷갈리는 길은 명확하게 갈 수 있게끔 새로운 표지판이 생겼다. 특히 순례자들이 여기저기 낙서해서 지저분해졌던 표지판도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가끔 순례자들이 장난을 치려고 안내 표지판을 거꾸로 돌려놓아서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 염려도 없어졌다. 


  또 연장된 산티아고 희년 기간에 머무는 건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순례길 곳곳에는 희년을 알리는 문장이 붙어있었고 사제가 상주하는 성당에는 희년을 맞아 찾아온 순례자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순례자들이 만든 나뭇가지 십자


  희년 기간엔 순례자들에게 대사 大赦가 주어진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대사를 얻기 위해 순례를 자청한다. 대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면해주는, 일종의 사면권이다. 알다시피, 가톨릭 교회엔 고해성사라는 양심 성찰의 장치가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고백함으로써 용서받는다. 하지만 죄지은 것을 스스로 알게끔 하려는 것이지 과거를 청산하게 도와주는 건 절대 아니다. 훗날 세상을 떠나고 나서 하늘나라 심판을 받을 때 그 죄에 관한 벌은 아직 남아있다. 대사를 받으면 이 벌 마저 면하게끔 해준다.


  희년을 온전히 보내기 위해서, 대사를 얻기 위해서 교황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기도를 해야 하고 미사를 통해 성찬례에 참여해야 하며 고해성사를 보고 스스로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순례길을 걷는 내내 최대한으로 미사를 드리려고 했다. 신부님 강론 중에 조는 한이 있더라도 성당에 가서 앉아있었다. 뭐, 스페인어로 사용하는 신부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긴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희년을 위해 순례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보여준 믿음의 여정을 끌어안고,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의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



  나는 코로나 기간에, 희년 기간에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길을 걷는 내내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현재 상황에 최대한으로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거기에 내 삶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 영성으로 일반적인 생각 너머의 것을 더 바라볼 수 있어서 기뻤다. 


  더불어 팬데믹으로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2년 넘게 순례길이 막히면서 주변에 있는 마을은 경제적으로 몽땅 무너졌다. 순례자들을 통해 얻는 여러 가지 삶의 지혜도 단절되었다. 다시 열린 순례길에서 동네 주민들은 나를, 우리를, 순례자 모두를 열렬히 환영해 줬다. 어떤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얼싸안고 이 한 마디를 하는데 여기서 모든 감정이 느껴졌다. 


 어서 와, 나는 너를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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