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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우물 Jan 31. 2020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2011년 여름, 교양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로 방송일을 시작했다. 당시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출퇴근을 하는 게 일상인 직업이라 월급으로 한 달치 방세와 택시비를 쓰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님 도움을 받는 게 죄송해서 최대한 돈을 아껴 썼는데 그중 하나가 식대였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나에게 서울의 밥값은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웠다. (당시 여의도 일대의 밥값이 한 끼에 7천 원 이상은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서 점심, 저녁 식대가 제공되어 아침만 해결하면 됐기에 나는 매일 아침밥을 회사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이 힘에 부치는 날이면 엄마가 차려주던 소박한 밥상이 생각나 목이 메곤 했다.


한 달쯤 됐을까,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아침 식사하려던 참인데 같이 먹자고. 동이 터오를 무렵, 팀장님은 나를 회사 근처에 있는 24시 국밥집에 데려갔다.


따뜻한 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가게를 나설 때 팀장님이 나에게 법인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작가 언니들 간식 챙겨줘. 가끔 너 아침도 챙겨 먹고. 멀뚱히 쳐다보는 나에게 팀장님은 덧붙여 말씀하셨다. 참고로 삼각김밥 사 먹으라고 주는 건 아니다-라고.


프로그램을 그만 둘 무렵, 나는 그 카드가 법인카드가 아닌 팀장님 개인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개인카드를 주신 거냐고 물어보니 딱 한 마디 하셨다. 팀장이잖아. 팀원들이 고생하는데 이런 거라도 챙겨줘야지..


묵묵히, 티 안 나게 작가, 피디들을 챙겼던 팀장님.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그간의 소식을 전하다 마케터로 이직했다고 이야기하니 마케팅 관련 서적을 선물해주셨다. 너는 근성이 있으니 어디서든 잘할 거야,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단다.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스물다섯에 시작한 낯설고 서툴기만 했던 서울살이를,업무 강도가 고됐던 방송일을, 지치지 않고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첫 프로그램에서 만난 팀장님 덕분이었다.


그리고 팀장님을 통해 말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온기는 팀장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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