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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우물 Apr 13. 2020

아이들이 세상에 머문 시간은 봄처럼 짧았다.

세월호 6주기를 추모하며


2014년 4월 16일.

우리 눈 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진도 앞바다에서 476명이 탑승하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무려 304명이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사고 소식을 접한 민간 잠수사들이 구조 활동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잠수사 500여 명이 투입됐다던 당국의 발표와 달리 20여 명의 민간 잠수사들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당시 시사프로그램 소속 작가였던 나는 민간 잠수사 들의 노고를 취재했었다. 사고 지역인 맹골수도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유속이 빠르고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매일 200 기압 공기탱크를 매고, 하루 한 번이라는 심해 잠수 규정도 어긴 채 수심 25m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제대로 된 끼니 하나 챙겨 먹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구조를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을 비롯한 실종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 숭고한 희생정신에 취재하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그들 중 오래도록 잊히지 않던 분은 산업 잠수사 김지호(가명) 씨였다. 그의 조카는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다.

 

김지호 씨는 조카를 찾기 위해 생업도 제쳐 두고, 민간 잠수사로 참여해 사고 첫날부터 매일 구조작업을 벌였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인터뷰에 응해준 김지호 씨의 바람은 조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카의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서 일까. 김지호 씨의 조카는 참사 15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김지호 씨는 조카의 시신이 인양되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실종자를 찾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고 하셨다.


열여덟 살의 아이들이 세상에 머문 시간은 봄처럼 짧았다. 가슴에 묻을 수도 없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해라', '잊어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일, 우리네 가족이 사고로 희생당했는데 그 원인조차 알 수 없다면 어떨까?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만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단원고 아이들과 일반인 희생자,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 그리고 세월호 의인 故김관홍 민간 잠수사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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