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경주 여행
- 임금비, <New Hippie Generation> 노래 중
경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 창문 밖으로 노랗게 무르익은 논밭과 그 위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대가 없이 즐겨도 되는 건가 싶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회사를 다니나 안 다니나 애씀의 연속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인지, 아니면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애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노력은 대자연의 대가 없이 주는 사랑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태어나서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조건 없이 누려오고 있다. 물건 하나만 사더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회에서, 내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도시
벅찬 마음을 가득 안고 도착한 경주는 정말 한적한 도시였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낮은 한옥 건물들과, 도시 이곳저곳 눈에 띄는 능陵의 존재가 경주라는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경주를 수학여행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당시,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경주는 유적지 따라서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녀야 하는, 다소 따분하고 정신없는 여행지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다시 찾게 된 경주는 이곳만의 고유한 문화와 감성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아, 정말 좋다. 얼마 만에 정말 여행다운 여행인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딱히 무언가를 한 건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주변 산책하고, 길 가다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심지어 밤 8시만 돼도 골목이 깜깜해져서 일찍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그동안 유명 관광지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이곳저곳 누볐던 여행과는 달랐다. 여행기간 동안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다.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여유로웠다. 그렇기에 더욱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유를 즐기는 게 이런 거구나.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남길지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여유는 뒤따라왔다.
삶에 대한 여유와 감사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발걸음을 떼기가 유독 아쉬웠다. 만족스러운 여행지였던 만큼,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보잘것 없이 짧게 느껴졌다. 문득 '인생을 여행하듯 살라'는 말이 떠올랐다. 평범한 일상,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을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참 철학적이고 어려운 문장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을 통해 이 문장을 곱씹어 본다.
너무 애쓰지 않기, 가득 채우지 않기, 감사하기
그동안 내가 삶을 너무 팍팍,하게 살고 있진 않았을까? 그 어떤 것도 대가 없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였다. 그렇기에 무얼 하든지 항상 애쓰고 노력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삶을 더욱 열심히 살 수 있었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힘이 많이 들어갔고, 그로부터 얻은 삶의 결실들을 당연스럽게 나의 공로로만 여겼다. 하지만 세상에 나의 노력으로만 얻은 것은 없으며, 심지어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노력 없이 거저 얻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가득 채우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충만해질 수 있고, 그럴수록 삶에 대한 감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것이다. 삶에 대한 여유와 감사, 그것만으로도 삶은 여행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