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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율 Feb 19. 2021

때로는 몸이 머리보다 빠르다

#01. 모네와 인상주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루에도 수백 건의 정보를 보고 듣고 읽는다. 새로운 기술이 매번 등장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들은 시장에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금방 질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제 50분짜리 TV는커녕, 10분짜리 영상도 집중해서 보기 힘든 나를 보면서 또 한 번 느낀다. 세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변화는 매번 다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두려움은 대체로 변화의 속도가 머리의 속도를 뛰어넘을 때 온다. "내가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까? 변화에 뒤쳐진 사람이 되면 어쩌지? 소외되면 어쩌지?" 이렇게 생각하니, 변화가 버겁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변화를 더 자주 가까이 마주치게 된다. 이제 변화는 강 건너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산업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전방에서 변화의 총알 세례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나는 내가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새롭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것들을 선망해 왔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그 변화가 버거웠다. 왜 그럴까를 생각했다. 평소에 나는 머리로 이해하고 '이건 이래서 이렇구나. 저건 저래서 저렇구나.'라고 규정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먼저 나서기보다는 일이 어느 정도 다 정리된 다음에 움직였다.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안전하다. 하지만 그만큼 늦다. 변화의 속도에 맞춰 나가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변화의 속도에 발맞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순간을 포착하는 화가 '모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빛을 그리는 화가'라고 불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모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기 위해, 색에 집중한다. 물론 모든 화가들은 색에 집중한다. 하지만, 모네는 색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빛의 작용에 따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색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 <루앙 대성당> 연작, 1892~1894, 캔버스에 유채.



빛은 오전과 오후 다르고, 맑은날과 흐린날, 여름과 겨울 제각각 다르다. 이처럼 빛은 시간, 기후,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리고 이런 빛의 변화는 우리 눈에 비치는 대상의 색을 바꾼다. 모네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 위에 옮기고자 했다. 2년간 무려 30여 점에 가까운 연작 '루앙 대성당'을 그렸다고 한다. 30여 점 그 어느 것도 같은 색을 띠지 않는다. 단순히 그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칭송하기에는 그것에 담겨 있는 노고와 의미가 크지 않을까?

 




인상주의, 색의 관념을 바꾸다


모네가 활동하던 당대 미술계에서는 자연의 색은 고유하다는 관점이 지배하고 있었다. 즉, 하늘은 파란색이고, 태양은 붉은색이며, 나무와 풀은 초록색이다. 그것의 옅고 짙음에 차이가 있을 뿐, 고유의 색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색에 의문을 갖는다. 그들 눈에 보이는 하늘은 하얀색, 붉은색, 보라색 등으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의 회화관을 벗어던지고 그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캔버스에 유채.


기성 작가들이 실내 아틀리에 공간에서 그림 그렸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야외로 나와 붓을 들었다.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그 당시 혁신적인 실험에 가까웠다. 인상파 화가들은 말 그대로,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하는 사물의 인상을 포착하는 혁신가들이었다. 


이런 혁신적인 움직임에 대해 당대 미술계의 평가는 처참했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모네가 풍경 묘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감상을 그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완벽한 대상의 재현을 추구하는 전통 회화관 안에서, 모네와 인상파 화가들은 갖은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이후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후 등장한 야수파와 입체파의 활발한 작품 활동에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나아가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다


모네와 인상파 화가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변화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의 두 눈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눈을 통해 지각되는 감각의 자료를 신뢰했다.  


감각은 우리의 눈과 코, 귀, 혀, 살을 통해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부터 감각에서 얻은 것은 단순 의견일 뿐이라며 평가절하 되었다. 그것이 참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필히 이성, 곧 사유를 통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새로운 변화 앞에서 기존의 개념이나 지식이 무참히 흔들리는 경험을. 내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 도저히 풀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이성의 마비가 오는 순간이다. 그럴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인간의 감각이다.


때로는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몸으로 뛰어드는 것이 필요하다. 몸으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얻게 되는 자료들이 기존의 지식과 얽히고설키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낸다. 이성의 사유로는 풀지 못하는 변화의 비밀들이 몸의 감각을 통해 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은 깨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즉, 감각이 주는 정보들을 예민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감각을 깨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감각을 깨울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환경에 내 몸을 맡기는 방법도 있다. 마치 인상파 작가들이 안전한 아틀리에 공간에서 위험천만한 야외 공간으로 나온 것처럼.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변화에 몸을 맡겨보자.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하자.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형태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로지 색상으로 보이는 것만을 그리십시오.
그러면 형태는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 Claude M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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