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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율 Mar 23. 2021

따라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

#03. 반 고흐와 밀레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내가 잘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어떻게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괜스레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나에게는 첫 직장에서 만난 '사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같이 일하면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회사의 창업 멤버이자, 콘텐츠 제작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그는 일을 벌이는 재주(?)가 좋았다. 그동안 주어진 일에만 익숙했던 나에게는 그의 '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참 부럽고 배우고 싶은 점이었다.


2년의 시간 동안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로 함께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 한 개 두 개 프로젝트를 완수해 나가면서 어느새 수동적이었던 내가 능동적으로 일을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창업을 하고, 사수와 부사수에서 대표와 PM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도 어려워하던 내가, 창업이라는 세계에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사수의 영향이 컸다. 사실 그 영향이라고 하면 그저 옆에서 많이 보고 따라 한 것이었다. 옆에서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한 것뿐인데, 어느새 그 사람이 일을 하는 방식과 태도, 가치관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업무 이상으로 어떤 사수를 만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밀레를 동경한 화가, 반 고흐


미술계에도 사수와 부사수처럼 특별한 관계가 있다.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이다. 비록 밀레와 고흐는 작품 활동 시기가 달라 직접적인 교류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깊이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래에서 왼쪽은 밀레의 그림이고 오른쪽은 반 고흐의 그림이다. 두 가지 작품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의 구도에서부터 인물, 배경까지 밀레를 열심히 따라 그린 고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고흐의 모사는 비단 초기 활동에서 멈추지 않고, 말년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왼쪽)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 / (오른쪽)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1



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림 실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모작'을 권장한다. 말 그대로 모작(模作)은 다른 사람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 그리는 행위를 말한다. 모작을 권장하는 이유는 잘 그려진 그림을 세밀하게 따라 하다 보면, 원작의 회화 기법이나 표현 방식의 디테일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러나 고흐는 단순히 밀레의 표현 방식이나 디테일만을 따라 하기 위해 모작한 것은 아니었다. 고흐가 이토록 열심히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밀레의 작품을 따라 그림으로써 그가 얻게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다


고흐는 밀레로부터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방법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 담긴 자연과, 농촌의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농부들을 흠모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밀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것은 밀레를 따라 고흐가 캔버스에 담고자 하는 그림의 소재였으며, 나아가 인생의 아름다움과 진실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밀레의 그림은 언제나 다시 그려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 농촌 풍경과 농부들은 멍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사는 가장 순수한 인간의 삶, 그것은 언제 그려도 좋은 소재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추수하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 해가 뜨면 일어나 밭을 갈고 해가 지면 보금자리로 돌아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흐의 편지 중


(위) 밀레, <첫걸음마>, 1858 / (아래) 반 고흐, <첫걸음마>, 1890



물론 고흐의 작품에는 그만의 색채 활용과 붓터치가 눈에 띈다. 고흐 특유의 회화 스타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밀레의 그림과 다른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그림의 소재와 그것을 바라보는 고흐의 시각은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고흐의 다른 작품에서 꽃과 별, 농촌, 길거리, 주변 인 등 자연과 일상의 소재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소재로부터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반 고흐, <우체부 조세프 룰랭의 초상>, 1888 / (오른쪽) 반 고흐, <해바라기>, 1889



결국 밀레는 고흐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예술가의 삶을 배우는 일이며,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을 하는 방법과 기술을 학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귀감이 되는 사람에게서 일을 보고 배우는 것은 내가 앞으로 일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나에게 귀감이 되는 인연을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흐와 같이 자신의 작품에, 또 인생에 귀감이 되는 존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 또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라 하는 것이 곧 자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고흐에게서 배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술적인 것은 없다.

-  Vincent Van Gog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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