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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율 May 07. 2021

반복은 기억을, 차이는 쾌감을

<놀면 뭐하니?>의 변주곡


<놀면 뭐하니?> 만의 매력은?



<무한도전> 이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다시 의기투합한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뽕포유, 싹쓰리, 환불원정대,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MSG 워너비까지 다양한 출연진과 여러 포맷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방송의 신선함과 재미를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이후 줄곧 인기 TV 프로그램 5위 안에 들만큼 대중에게 확실한 매력 어필을 했다.


이쯤 되면 <놀면 뭐하니?> 매력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쉽게는,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무한히 확장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매 프로그램마다 유재석을 제외한 출연진이 바뀌고, 방송 포맷 또한 음악 경연, 음식, 리얼리티, 스튜디오 예능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만을 주목하기에는, 매 프로그램에서 어디서 본 듯한, 다시 말하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포맷과 요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의 매력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반복'과 '차이' 요소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한국 예능 방송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되, 캐릭터, 스토리, 배경 등에 변화를 주고 있다. 즉, 프로그램 안에서 '반복'과 '차이'를 적절히 활용하며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놀면 뭐하니?>는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의 '변주곡'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반복과 차이의 변주에서 우리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어 갈 수 있을까? 





반복과 차이가 빚어내는 예술, 변주곡


음악은 '반복'과 '차이'가 만들어내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2가지의 요소가 조화롭게 뒤섞여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음악에서 반복은 전체적인 구조를 만들고 통일성을 가져다준다. 음악은 계속 새롭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테마를 바탕으로 약간의 차이를 주어 발전시켰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반복하는 등 반복과 차이를 짜임새 있게 구성해,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의 주제와 감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마치 건물의 기본적인 뼈대는 같지만, 그 안의 인테리어를 다양하게 꾸미는 것과 같다.    


작곡에서 반복과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형식이 바로 '변주곡'이다. 변주곡은 하나의 테마를 다른 모습으로 변주하여 진행한다. 대표적으로,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이 있다. 아래 악보에서 알 수 있듯이, 테마를 시작으로, 변주1, 변주2, 변주3, ..., 변주 12로 진행된다. 첫 주제의 기본적인 음형은 계속 이어지되, 변주에서 리듬이 쪼개지거나, 화음이 달라지는 등 새로운 변화가 주어진다.  

변주곡(變奏曲, variation):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리듬이나 선율, 화성 등에 변형을 주어 만든 악곡을 말한다. 변주라는 것은 한 번 나타난 소재(주제, 동기, 작은악절 등)가 반복할 때 어떤 변화를 가하여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 위키백과


Mozart, <작은별 변주곡 K.265>의 테마
Mozart, <작은별 변주곡 K.265> 중 제 1변주
Mozart, <작은별 변주곡 K.265> 중 제 3변주


Mozart 12 Variations on "Ah vous dirai-je, Maman". 정명훈 연주.



반복과 차이의 요소는 음악과 음악 간에도 나타난다. 작곡가들은 과거의 유명곡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의 <캐논>을 변주한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1949~)의 <캐논 변주곡>이 있다. 특히, 매력적이면서도 친숙한 멜로디를 가진 파헬벨의 캐논은 오늘날까지도 재해석을 통해 다양한 대중 음악에 사용되고 있다. 이는 소위 머니 코드(Money Chord)로 불리는 코드 진행의 원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머니 코드 'C - G - Am - F'를 활용한 노래로는 비틀즈의 <Let It Be>,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아델의 <Someone Like You>, god의 <길>, 2ne1의 <I don't care>,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아이유의 <좋은 날> 등이 있다. 겨울왕국의 OST <Let It Go>도 같은 코드 진행이라고 한다.  


변주곡 형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음악에서 '반복'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본적인 멜로디 라인에 익숙해지고 곡의 주제에 대해 명확히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변주의 진행과 함께 발생하는 '차이'는 테마와 다른 음악적 기교를 보여주면서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처럼 반복과 차이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기면서도, 미적 쾌감을 낳는 작품이 된다.





<놀면 뭐하니?> 변주곡


<놀면 뭐하니?>는 프로그램 곳곳에 반복과 차이의 요소를 잘 사용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변주곡 형식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매력 요인을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 메인 캐릭터 '유재석'의 반복과 차이


그동안 유재석은 프로그램 안에서 유두래곤, 닭터유, 지미유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소위 '부캐'라는 트렌드와 함께, 시청자의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냈다. 유재석과 그의 부캐들을 중심으로 한 <놀면 뭐하니?>의 테마, 곧 기본적인 틀은 바로 '본래 자신의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의 옷을 입고, 진짜인양, 때론 진짜를 위협할 정도로 그럴듯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유재석이 다양한 역할을 멋지게 해내면 해낼수록 많은 사람들은 그에 열광할 것이고, 쾌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유재석의 '부캐'는 단순히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대리만족시키는 메인 테마인 것이다. 


'놀면 뭐하니?' SNS


이는 흥미롭게도, 김태호 PD의 전작인 <무한도전>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을 테마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은 연속선 상에 있다고 보인다. <무한도전>의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김태호 PD이 보여줄 앞으로의 <놀면 뭐하니?>가 기대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2. 방송 포맷에서 나타나는 반복과 차이


<놀면 뭐하니?>에서 흥미로운 점은 어디서 본 듯한, 우리에게 익숙한 방송 포맷을 적극 취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에 <놀면 뭐하니?>의 캐릭터를 배치해 신선함을 자극하기도 한다. 한 예로, <싹쓰리>와 <환불원정대>는 흡사 오늘날의 아이돌 육성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본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아이돌이 이미 가요계에서 정상을 찍어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새로운 프로젝트 명을 달고, 새로운 그룹으로 기존의 가요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현재 방영 중인 <MSG 워너비>도 기존의 <복면가왕>이나 <히든싱어>와 같이 정체를 숨긴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포맷을 띠고 있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목소리만으로 평가한다는 점과 예상치 못한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서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가 다른 점은, 여기서 나아가 정통 발라드 그룹 'SG 워너비'를 이을 'MSG 워너비'라는 타이틀의, 본캐를 능가한 부캐 그룹을 발굴해 키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음악 경연을 넘어, 앞으로 보여줄 부캐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놀면 뭐하니?>의 MSG 워너비 프로젝트




3. '머니 코드'를 활용한 반복과 차이


요즘 방송 프로그램에도 일종의 '머니 코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음악'과 '음식'이 있다. 콘텐츠에서 음악과 음식을 소재로 다루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공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 TV 방송부터 시작해 유튜브 개인 방송까지 많은 채널에서 앞다퉈 음악과 음식을 킬러 콘텐츠로 사용하는 까닭이다.


그동안 <놀면 뭐하니?>에서 다룬 소재의 다수가 음악과 음식이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특히 프로그램의 60% 이상이 음악을 다루고 있는데, 음악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실제로 다른 소재의 것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 이런 결과만으로도 킬러 콘텐츠의 반복적 사용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악 소재에 대한 지나친 콘텐츠 의존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전작인 <무한도전>이 비교적 다양한 주제와 신선한 시도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샀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단순히 <놀면 뭐하니?>가 음악 콘텐츠를 다루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면에는 음악 콘텐츠 이상의 것을 보고 싶은 대중의 기대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김태호x유재석 조합만으로도 대중은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개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소재의 반복 안에서 어떻게 차이를 보여주며 이끌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제작진 및 출연진의 역량에 달려 있다.  


<놀면 뭐하니?>를 변주곡 형식으로 접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방향성은,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테마를 확고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무모한 것들에 도전한다'는 테마를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갔던 것처럼, <놀면 뭐하니?>는 오늘날 ‘부캐’라는 트렌드 안에 내재된 대중의 심리, 욕망을 깊이 이해하고 건드리는 일이 필요하겠다. 메인 캐릭터 유재석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색다른 모습, 숨겨진 끼와 재능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키워주는 방식 말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자신을 투영하고, 내 것처럼 몰입하게 될 것이다.


도돌이표 (출처: 구글 이미지)


악보의 기호 중에는 ‘도돌이표’가 있다. 악보에서 도돌이표는 단순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하라는 기능만을 뜻하지 않는다. 도돌이표를 넣음으로써 곡 전체의 구조가 완성되고, 비로소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로 청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반복 기능 이상의 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과 같이 창의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때가 또 없다. 이에 종종 변화는 창의적이고, 반복은 식상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복은 변화만큼이나, 때로는 변화보다 더 큰 힘을 콘텐츠에 불어넣는 기획 요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콘텐츠에서 반복은 무작정 피해야 하는 요소가 아니라, 차이와 함께 적절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요소라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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