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를 만난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포니와 산책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테다.
해가 땅을 데우기 시작했을 즘이었다. 포니와 함께 하천의 교량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요! 119…….
지금 119라 한 건가?
이어폰을 빼고 뒤를 돌아봤더니 빨간 모자를 쓴 아저씨가 말끝을 흐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개천가에 걸터앉아 있던 그는 약간의 취기가 있어 보였다. 경계심에 가까이 다가서진 못하고 흘낏 쳐다보았다.
자전거랑 가방이 물속에 빠졌어요. 휴대폰도 가방 안에 있어서 그런데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무척 당황스러웠다. 119에 신고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이런 일로 신고해도 되나 싶었다. 자세히 보니 자전거는 1m 넘는 곳에 빠져있었고 아저씨 얼굴엔 상처가 나 있었다.
하이고 다치셨어요?
다친 얼굴과 상황을 보고 신고를 결심했다.
아이 다치진 않았는데 창피하네.
아저씨의 얼굴엔 붉은 술자국이 남아있었다. 살짝 풀린 눈은 누가 봐도 취한 사람 같았다.
119 부르면 돈 내라고 하려나. 그런데 내가 건질 수가 없으니 좀 불러주세요.
119에 전화해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였다. 전화만 하고 가려했지만 구조대에서 근접해질 때 위치를 말해달라 하였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함께 구조대를 기다리게 되었다. 평소 정적을 잘 참지 못하는 나는 먼저 말을 건넸다.
다치셔서 어떻게 해요. 그런데 혹시 한잔하셨나요?
네 맞아요.
아저씨는 머쓱한 미소를 띠었다.
새벽에 자전거 타고 한강에 갔다가 술 좀 마셨습니다.
술 마시고 자전거 타면 안 되니깐 자전거 끌고 걸어오다가…….
아이고 어쩌다가 자전거 끌고 술을 드셨어요. 저희 아버지랑 연배가 비슷해 보이시는데 자녀는 있으세요?
아저씨는 말할 때 아랫입술이 삐죽 나오곤 했다.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다가도 주욱 하고 나온 입술을 쳐다보았다.
아이유. 돈 없어서 장가도 못 갔어요. 아버지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
아저씨와 아빠는 동갑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어쩐지 아가씨한테 부탁하고 싶었어요.
또다시 정적이 흐르려던 차에 구조대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아저씨에게 잠시 앉아 계시라 하고 소방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소방관들께 위치를 설명해 드리고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이제 구조대 올 거예요. 저는 가볼게요.
아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양손으로 아저씨의 손을 잡았고 황달기 있는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 저 가볼게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포니와 걸어갔다.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왔을 길로 걸어갔다. 아저씨가 달린 새벽을, 한강 다리 아래 마셨던 술을, 구조대 부르면서 했을 돈 걱정을 잠시 생각했다. 아저씨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지만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분명 아팠을 상처.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떠오른다. 그때보다 행복해지셨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