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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부드러워 May 13. 2019

영감을 찾는 미술관 산책

공간의 본질에 대하여

이번 주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에 다녀왔습니다. 북적임을 피해 주말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부지런하게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허나 바램과는 다르게 미술관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호크니가 이 정도로 인기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북적이는 미술관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긴 줄의 압박감과 감상을 방해하는 다양한 북적임은 미술관 방문의 목적과 매칭 되지 않는 파편적인 감상을 만들어냅니다. 때문에 오히려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보다 적은 작품수의 생소한 작가의 조용한 전시회에서 더 강한 끌림과 울림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서울시립미술관 2019.3.22~8.4)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도 관람객에게 정서적 울림과 영감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미술관의 의미는 퇴색될 것입니다. 반면 소수의 작품만 소장되어 있더라도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정서적 영감을 풍부하게 얻어간다면 그 미술관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미술관의 본질은 "영감"과 연결과 되는 것이죠.



도쿄 네즈미술관, 영감을 만들어드립니다.


도쿄 오모테산도 역에서 내려 남쪽 방향으로 쭉 내려오면 보이는 정원식 미술관이 있습니다. 네즈미술관입니다. 네즈 미술관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고미술 작품과 일본 근세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립 미술관입니다. 전통적인 일본식 정원이 미술관내 자리하고 있어 편안하게 쉬어가며 관람할 수 있는 서정적인 미술관입니다.



네즈미술관은 일본의 대표 건축가인 쿠마 겐고의 설계를 바탕으로 2009년 리뉴얼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60년이 넘은 정원과 현대식 일본 건축의 콜라보로 다시 태어난 네즈미술관은 "영감"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 바꿈 했습니다. 건축가 쿠마 겐고는 미술관을 설계하며 어떻게 방문객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디테일한 질문을 통해 공간을 구축했습니다.


네즈미술관의 입구


미술관의 입구는 양쪽으로 길게 뻗은 대나무 통로로 시작됩니다. 미술관 입구에 도달하기까지 걸어야 하는 이 길을 통해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서정적인 정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100m 이상의 대나무 길을 통과하며 감상에 대한 준비 모드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죠. 사실 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방문객은 예술작품을 통해 어떠한 영감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즈미술관은 방문객의 정서적 상태까지 조율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네즈미술관 내부에서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있습니다. 몰입감 있는 집중을 통해 더 확실하게 인사이트에 대한 실마리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네즈미술관 내부 소품입니다. 소품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써 그 자리에 존재합니다. 의자와 같이 관람객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에서도 인사이트의 소재를 다양하게 심어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즉, 관람에 있어 What 보다는 How에 더 무게의 추를 두었습니다.


네즈미술관의 의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본식 정원


네즈미술관의 핵심은 본관 전시실이 아닌 미술관을 둘러쌓고 있는 일본식 정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건축가 쿠마 겐고는 관람객들의 영감은 특정 작품에서 얻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술관의 계획된 공간 구성을 통해 정서적 흔들림을 줘야 한다는 마인드가 그에겐 있었습니다.


정원은 미술관의 면적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술관과 정원은 유리벽 하나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관을 나와 정원의 경사진 아래를 쭉 내려오면 일본 전통의 연못과 우거진 숲과 마주하게 됩니다. "영감의 대부분은 한가로운 산책을 통해 만들어진다"라는 말처럼 네즈미술관은 관람객의 여유로운 산책에 집중했습니다. 정원은 수 십 년이 넘은 고목들로 채워져 있어 말 그대로 자연의 밀림과 같은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정원의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영감을 기록하고 사색하는 관람객을 볼 수 있습니다. 미술관 측은 관람객이 산책하는 도중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두었습니다. 넓은 공간을 통해 관람객을 밀도를 분산시켰기 때문에 정원은 매우 조용했습니다.


네즈미술관은 미술관의 입구부터 내부, 정원까지의 공간은 "어떻게 하면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인들이 전시하고 있는 미술 작품에 대한 추종보다는 방문객의 영감의 소중함을 인지했습니다. 공간을 통해 성공적으로 인사이트를 획득한 고객은 그 공간을 재 삼차 방문하게 됩니다. 공간이 주는 효용이 지속 가능하게 연결되는 것이죠.  




공간에 대한 재해석


미술관은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 하는 곳일까요?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미술관의 최종 목적은 관람객의 영감을 얼마나 잘 만들어 낼 수 있는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얼마나 높은 확률로 영감을 부여할 수 있는지가 미술관의 핵심입니다.


네즈미술관은 공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보다는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공간에 대한 혁신은 공간의 본질을 재 적립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앞선글에서 설명드렸던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서점이란 곳은 꼭 책을 다뤄야 하는 것인가?라는 서점 본질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츠타야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냈고 성공적인 오프라인 공간 혁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공간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 없다면 공간 연출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본질 없는 공간은 트렌드라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미술관은 꼭 많은 미술품을 다뤄야 하나? 아닙니다. 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영감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간이 갖는 의미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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