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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oia Sep 22. 2018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시네마천국>

*영화 이야기가 잠깐 나오지만 영화리뷰는 아닌것같아요.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

시청률 50%에 육박했던 유명한 드라마의 명대사였던것 같기도 하고, 어느 인디밴드의 노래 제목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유명한 구절이다. 이 짧고 간결한 문장 하나가 오랜 시간 회자되는 것을 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나보다. 왤까, 추억에 질척거리는 태도에 진절머리 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문장의 가치는 추억의 의미를 부정하는 데에 있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억을 되새기고 그것을 계속해서 되새기는 자신을 스스로 가여워하는 데에 있다.

솔직해지자구요. 지난 추억에 아련해지지 않는 사람, 있나요?





누군가가 나를 어떤 유형의 사람이냐, 묻는다면 '추억지향적 인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미래지향적 인간이 되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안다. 내일을 살지는 못할망정, 오늘도 아닌 어제에 갇혀있는 사람은 비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심한 눈초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무미건조하거나 쓰기만한 오늘을 살아내는데에, 추억이라는 사탕을 까 입안에서 몇번 굴리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가. 뭐 대단한 추억은 아니다. 난 아직 어리고, 살면서 그다지 대단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추억들은 대부분 매우 소소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유치원 버스 안에서 오후 세시쯤이면 늘 울려퍼졌던 라디오 cm송. 하굣길에 매일 사먹었던 300원짜리 떡볶이.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30분간 걸어갔던 그 겨울의 포근한 두근거림. 처음 교복을 입고 느꼈던 즐거움과 약간의 어색함.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고 혼자 울고있던 집 앞 놀이터 그네. 그때는 누구보다 가까웠으나 지금은 어색해진 사람들. 희미한 기억 속에 함께 웃고 있으나 지금은 찾기 힘든 사람들. 혹은 이젠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람들. 추억들은 모두 달콤하지만은 않으나, 박하맛 사탕이나 계피맛 사탕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것처럼, 쌉쌀한 기억도 화-한 기억도 돌이켜 생각하면 즐거워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미화라고 할테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요. 이렇게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는데.





 추억은 지금 내가 살아야 할 순간이 아님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면서도, 추억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영화라는 경이로운 매체로 찬란하게 박제한다.





 그런 나에게 <시네마 천국>은 야속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아무리 추억지향적 인간인 나라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살아내야 하는 '지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한다.

 처음 영화를 꿈꾸게 만들었던 뿌연 먼지를 뿜어내며 돌아가는 영사기, 그 낡은 극장을 메운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 평생을 바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던 연인과의 기억, 꿈을 나누어주고 미래를 그려준 사람과 함께했던 흔적. 토토는 오늘과 내일을 살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봐서도 안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저편으로 물러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서러운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안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기꺼이 그 일을 자청했다. 오직 토토의 내일을 위해서.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추억에 젖어 약해지지 말라고, 저마저도 잊으라고. 둘이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곳곳에 스며든 그 공간을 말끔히 지우라 단호하게 말했다.  

 그랬으면서, 그렇게 잔인할만큼 냉정하게 말했으면서, 알프레도는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수많은 추억을 필름 한 통에 꾹꾹 눌러담아 토토에게 남겼다. 그 시절 검열당해야만 했던 남녀의 입맞춤이 가득한 그 필름에는, 유년 시절 토토를 꿈꾸게 만든 낡은 극장 'cinema paradiso'가 있다. 영화를 볼때면 언제나 눈을 빛내던 '작은 악마'같은 꼬마와 그를 보며 화를 내는 척하지만 결국은 웃고 말았던 그의 늙은 친구가 있다.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그때의 그 작은 마을이 있다. 그때라서 가능했던 어리석은 사랑이 있다. 돌아갈 수 없어서 그립고 그래서 달콤하고 쌉쌀한 추억들이 있다.




지나간 추억은 정상을 향해가는 나를 뒤에서 밀어줄 힘 따위는 없다. 오히려 자꾸만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게해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산을 오르기는 커녕 두 다리로 땅을 디딛고 서 있는 것조차 힘에 겨운 날이 있다. 그런 날 추억은 그늘이 되고, 물 한모금이 되고, 초콜렛이 되어서 언젠가 기운을 차리고 다시 걸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추억은 힘이 없지만, 힘이 있다. 그 날 텅빈 극장에서 필름을 돌려보고나서, 마침내 토토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잊어야만했던, 하지만 이제는 평생 오롯이 기억할 그 추억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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