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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paris Dec 26. 2018

골목만 걸어도 충분한 여행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유명 박물관들을 돌아봐야 하고, 어느 누구는 유적지를 가봐야 하며 또 다른 이는 로컬 시장을 둘러봐야 한다는데 나는 무조건 골목 여행이 최고라 외친다.


골목만 걸어 다녀도 충분한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라. 딱히 목적지 없이 걷되 한 번 갔던 길로는 다시 가지 않겠다는 목표 하나만 두기. 거기에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내내 나 또한 이곳 현지인과 다를 바 없다는 주문을 걸고 또 걸어주면 이만한 재미가 또 없다.

그 뒤에 발견하는 모든 것들은 보물찾기 저리 가라다.





마주치는 얼굴과 눈빛들에 호기심 어린 시선 대신 그저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들로 마주하자고. 나는 어느 여행책이나 여행 프로그램의 배경 속에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내가 이곳에 있는 실감을 온전히 느끼며 걷고 또 걷는 여행이 무척이나 좋더라.

그런 이유로 다시금 마라케시는 골목을 걷는 걸로도 충분한 여행이었다.



전통 의상을 입고 걸어가는 이.
선거용 대자보 대신 손수 적은 글씨들.
옥상 위 널린 빨랫감과 여기저기 걸린 판매용 카펫.
길고양이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곳.
거리 곳곳 쉽게 만날 수 있는 당나귀들.


첫 글에 언급했듯, 당시 나는 신선한 자극이 되는 새로운 여행지가 간절했다. 재수 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유럽은 시시해졌고, 미국은 이유 없이 싫고, 또 다른 여기저기는 이러저러해서 싫다는 핑계들은 사실 모두 다 모로코를 가고 싶다는 외침과도 같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아랍 국가라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서 오는 두려움은 모로코 여행에 앞선 설렘 속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 속 골목 곳곳에서 나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내 온 마음을 다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보면 볼수록 이 골목길 풍경이 영원하길 바란다고 읊조리고 내뱉었던 순간들.



창문만 열면 펼쳐지는 조그마한 구멍가게.
왠지 우리나라의 옛 시장 풍경이 떠오르던 모습들.


여행이란 순전히 나의 일상과 다른 공간 및 풍경이 주는 색다름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어느 도시를 가든 보이는 수많은 스파 브랜드들 및 체인점들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행을 온 건지 아니면 그저 번화가로 나온 것인지 싶던 실망감을 온전히 보상받은 듯한 색다름을 선사한 마라케시. 심지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은 의문까지 주었던 골목길들.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요란이냐는 사람들을 일일이 데려가 보여주고 싶은 동시에 관광객 적은 지금 이대로 보존되어주길 바라는 이기심이 가득했던 여행.





어쩜 이리도 당나귀들이 많은지.

사람과 당나귀, 오토바이가 신호등도 따로 없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풍경이 처음엔 어찌나 놀랍던지. 화들짝 놀라 황급히 피했던 초반의 모습과 달리 며칠 지나 이것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미리 슬쩍 피하는 여유마저 생기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짐 가득 끌고 좁은 골목을 다니는 당나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걸보며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구나 싶던 곳.



열쇠 집이겠거니 싶던 수제 간판.
어느 미용실의 외관.



하굣길이 되니 거리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손주를 데리고 또 다른 손주의 하굣길 어귀에 기다리고 섰다. 물론 당나귀와 함께.

그 모습이 한없이 예뻐서 한참을 서서 바라봤던 이 장면이 이 날의 가장 인상 깊던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골목길.
마라케시 특유의 인상깊은 벽 색깔.



세월의 흔적이 머물고 쌓여서 온전히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벽과 지붕들. 낡고 어두침침하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인상은 전혀 없고 이게 뭐가 대수라고 그저 좋다고 사진 찍는 내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나 보다.





열심히 걷고 또 걷다가 만난 구멍가게.

한눈에 보기에도 빈티지한 상자들과 각종 불량식품 가득한 진열장이 사뭇 익숙하고도 반가워서 고대로 데려오고 싶던 가게. 순간 이곳의 아이들도 하굣길이 꽤나 즐겁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가게 또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 다음번에 또 발견한다면 뭐라도 꼭 사야지. 조금의 보탬이 되어 이 가게가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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