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딸이 버블 속에서 자라길 원하지 않아.
여긴 진짜 세상이 아니잖아”
스위스 주재원으로 왔다가 2년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가 살기로 결정한, 남편의 전 직장 동료가 한 말이다.
여긴 진짜 세상이 아니란다. 스위스에서의 삶이 진짜 세상이 아니라니. 그럼 여기 살고 있는 나는 뭐라는 건지 당황스러운 한편으론, 그래 그럴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네 싶다. 여기가,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주가 조금 더 특별한 건 맞으니까.
스위스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부유한 주.
범죄율, 실업률 적고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건 기본이고, 풀과 소똥을 가득 싣고 가는 트랙터 뒤에 람보르기니, 벤틀리 같은 고급 자동차들이 줄지어 따라가는 풍경이 너무도 익숙한 곳. 세계적인 기업들의 회사 바로 옆 들판에 소와 양, 염소가 온종일 풀을 뜯으며 종소리를 울려대는 곳.
사실 조금 아니러니 하긴 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이라 나도 한때 흠칫 놀라곤 했으니까. 워낙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라서 2개 국어 쓰는 애들은 기본에, 우리 애들처럼 4개 국어 쓰는 아이들도 수두룩하다. 소위 말하는 부자들이 가득한 곳이지만 겉으로 전혀 티 나지 않고, 모두가 웃으며 길거리에서 인사 나누는 그런 곳. 아이들 얼굴에서 행복이 묻어나 있는 곳.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뒷산에서 스키 타는 그런 일상이 당연한 곳. 이런 곳이라 어쩌면 버블 속 세상이라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터지지 않게 단단한 보호막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곳.
근데 난 이런 버블 속에서 최대한 우리 애들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실제 세상과는 동떨어진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 혹자는 비난한데도, 얼마든지 누리고 즐기고 영위하며 살 수 있도록.
만 4세부터 유치원 등하교를 혼자서 해도 걱정하지 않고, 길 가다 마주하는 동물들에게 풀 먹여주고, 여름이면 풀벌레 소리 들으며 숲 산책하고 겨울이면 숲 속이든 들판이든 눈썰매 타고 눈싸움하는 그런 삶을 최대한 누렸으면 좋겠다.
그게 설령 버블일지라도. 언젠가 터진다 해도, 그 순간까지 최대한 즐길 수 있기를. 아무런 걱정 없이 몸과 정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기를. 이런 내 마음 또한 굳건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