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둘째 아들이랑 미래의 직업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네가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너는 그럴 수 있다고.
그러니 자기는 조향사도 되고 싶고, 양털 깎아주는 사람도 되고 싶고, 마멋 전문가도 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단다.
음, 굉장히 프렌치적이고 동시에 스위스적인 직업 구성이다 생각하는 찰나 엄마처럼 되고 싶단다.
“어머 그게 무슨 말이야? 왜왜? 엄마 왜?”
순간 기쁜 엄마 마음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 톤이 한껏 치솟았다. 그 속에 기대를 꾹꾹 눌러 담아서. 그리고는 이내 한없이 추락시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 아무것도 안 하잖아”
와 진짜 내 예상 시나리오에 전혀 없던 답변이라 말문이 막혔다. 올 것이 왔구나. 근데 저 말이 벌써부터 만 5세 어린이의 입 밖에서 튀어나올 일인가. 물론 본인의 의도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겠다만, 내 충격은 그런 것 따위 감안 할리가 없다. 충격은 충격인 거다. 차분하게 되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엄마는 너네의 요리사도 됐다가 드라이버도 됐다가, 선생님도 됐다가, 청소부도 됐다가, 의사 선생님도 되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어? 맞네?!” 숨 가쁜 엄마의 설명 무안하게 짧은 반응이 끝이다. 그리고는 다른 직업들을 다시 나열하기 시작한다.
애를 재우고 곧장 신랑한테 달려가 당장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진짜 때가 됐다고, 난 이제 사회로 나갈 거라고.
동시에 불현듯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 언젠가 아이가 넷인 프랑스 엄마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들은 이야기. 셋째 딸이 어느 날 “엄마는 왜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일 안 하고 집에만 있어?”라고 묻더란다. 그 속에 사춘기 철없는 창피함과 버릇없음을 모두 담아서. 배신감에 무척이나 속상했다는 하소연이었는데, 듣는 내가 화가 나서 씩씩댔었다. 엄마가 집에 있어 좋은 건 내 시절이었나 보다. 지금 세대는 다른 건가, 집에 있는 엄마가 창피할 일인가. 언젠가 그런 말을 들으면 나 너무 속상할 것 같은데.
그 속상함이 이렇게 훅 왔다가 휙 사라진 그날 밤. 다행히 그 사춘기 딸이 내뱉은 문장과 내 5살 아들이 툭 던진 문장의 충격 크기가 달라서 며칠 지난 지금은 뭔가 충격보다는 자극이 되었달까. 그래 나 아직 젊고, 애들은 이제 제법 컸으니 나 이제 진짜 일하러 가야겠다. 오롯이 나를 위해. 온전히 나의 자아를 위해. 벼르고 별러왔던 언젠가가 코앞에 다가온 거지. 6년 엄마로 살았으니 이제 워킹맘으로 진화해 볼 때. 그것도 순전히 내가 원해서. 근데 그렇다고 뭐 당장 나가 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그동안 글이나 열심히 써보련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2년 묵혀뒀으니 이거 슬쩍 돌아와 엄마 옆에 또 다른 수식어 하나 추가해볼 요령으로. 내 마음도 툭툭 내뱉어볼 심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