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
어느 날 친정 엄마가 무심한 듯 툭 내뱉은 고백.
“몇 년 전 그때 있잖아, 너네 집에 너를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 그땐 마치 너를 창살 없는 감옥에 놔두고 오는 것 같아서 엄청 울었어.”
엄마가 우리 집에 와계신 동안 지내신 방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자기 전에는 알루미늄 소재의 외부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야 한다. 커튼도 없는 탓에 블라인드를 내리는 순간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회색 블라인드뿐이다.
그때는 그게 꼭 감옥의 창살처럼 느껴지셨단다. 이제는 다 지났으니 하는 이야기란다. 그리고 고생했다고, 이제 너도 애들 다 키웠다고 웃으며 말하시는데, 그게 어찌나 속상하던지.
우리 엄마가 왜 그렇게 얘기하셨는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때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 거며, 그 속은 오죽했을까 싶어서… 담담한 고백에 놀란 마음 감추고 나 또한 웃어 보인다. 이제 진짜 괜찮다고. 그 창살 같은 회색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창살처럼 보이는 일은 없다고 확고히 말했다.
그리고 그때는 나 또한 그렇게 여기며 살았던 때였다고 고백했다. 친구들 중 유일한 애 엄마였는데 거기에 연년생 같은(고작 17개월 차이) 영유아 남자애가 둘, 신랑은 외국인, 거주지는 신랑의 나라도, 내 나라도 아닌 그야말로 타지. 그것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스위스라니. 내가 살던 서울의 높은 빌딩 숲 대신 진짜 초록 숲들이 한가득에 우리가 살던 파리에서의 화려한 쇼윈도들 대신 소들만 가득한 해발 900미터의 평화롭고 또 평화롭기 그지없는 스위스 마을에서의 삶이라니. 당연히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없이 독일어도 못하던 내가 이곳에서(심지어 당시엔 운전도 못하는 장롱면허였음) 갓난아기 둘과 함께한 첫 3년은 정말 엄마 말대로 그러했다.
역시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감추려 해도 자식의 속내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법이다. 좋은 얘기만 꺼내는 문장 하나하나 사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 속에 진짜 내 속마음이 엄마한테 한숨처럼 훅 들어갔다 나왔다 했나 보다.
그림 같은 멋진 풍경, 그 풍경을 매일 마주할 수 있는 통유리창의 정원 있는 예쁜 집, 귀여운 아기 둘, 자상하고 멋진 신랑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했는데 내 삶은 왜 그리도 우울하던지.
남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냐고 할 게 뻔하고, 나 조차도 나 스스로 그들의 말에 동의하는데. 근데도 우울한 걸 어떡해.
“나 우울증인 것 같아”라고 말하면
“말도 안 돼. 어제는 너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이랬잖아” 답하는 남편에게
“어 근데 오늘은 아니라고!!!” 빽빽거리던 밤이 수없이 반복됐다. 정말이지 미친 게 분명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렇다고 온전하게 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그 누구도 없었다. 같이 사는 신랑도 못하는 걸, 심지어 나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이 감정들을 쏟아내고 싶은데 쏟아낼 곳이 없어 미칠 노릇이었다. 누군가가 꼭 나를 이해해줄 필요는 없지만 얘기하며 쏟아내야 감정이 해소되는 내게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미칠 것만 같았다. 잠깐 애 맡길 친정도, 시댁도 없고 막상 맡기고 나가봤자 갈 곳이 없는 그 현실이 그저 속상하고 서러웠다. 그러면서 베이비 시터를 쓰는 건 죽어도 싫다고 한 내 똥고집도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든 처음이라 그랬다. 그리고 그게 내 주변 지인들보다 조금 빨랐던 탓이었다. 지금의 나였으면 남들 다 하는 육아 나도 잘해야지, 그리고 이 정도면 편한 거지. 했을 테지만 그때는 오롯이 내 주변에 나 혼자 뿐이었던 터라. 육아의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었다. 엄마한테는 힘들단 소리 하기도 싫었고. “너 친구들 애 낳고 키울 때 되어봐. 그땐 다 키워놓은 네가 다 부럽다고 할 거야”라던 엄마의 말이 그땐 왜 그리도 까마득한 거짓말처럼 들리던지.
역시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까마득한 문장이 현실이 되어 있는 현재. 시간이 가면 다 괜찮다던 그 말까지도. 엄마는 역시 엄마다. 그 타지에서 어떻게 애 둘을 키웠느냐고, 존경스럽다는 친구들의 말에 떠올리는 그때 그 시절이 벌써부터 아득하다. 조울증 마냥 행복과 불행을 하루 걸러 바꿔 외치던 밤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다.
아이들이 컸다. 마음 맞는 친구들도 충분히 생겼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7년 가까운 생활 동안 이 곳이 좋아진 내 모습이 아직도 낯설 만큼. 도시 찬양을 하던 애가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다. 정적이 좋고 자연이 좋다고 말한다. 불행이니 우울이니 하는 부정적 단어들이 쏙 들어가고 그저 이곳에서의 삶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고작 7년의 시간 동안 내 아기들은 아이들로 성장했고, 나는 아이에서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한 기분이다. 창살 없는 감옥 같던 곳이 이제는 세상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일 뿐이라고. 아침저녁으로 통유리 너머 쏟아 들어오는 햇살과 창밖으로 펼쳐진 산과 호수를 보며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내가 내뱉는 좋은 문장들 속 사이사이에 꽉 찬 행복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