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
친구와의 산책길, 툭하고 던진 고백에 턱하니 맞장구가 쳐진다.
아내와 엄마가 된 현재.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만이 아니어서일까. 지킬 게 많아져서일까. 일단 저지르고 보자 했던 내가 이제는 ‘그랬을 때 발생할 위험은 어쩌지’부터 생각하고 있다.
내가 너무 낯선 순간들이 훅하고 찾아온다.
초등학교 겨울 방학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받았던 스키 강습은 당일 중급 코스를 혼자 쌩하고 내려오던 순간의 장면으로 기억이 생생한데.
어째서 4년 전, 철저하게 내 의지로 받은 개인 스키 강습은 강사에게 매달리다시피 진땀 빼며 내려온 장면으로 연출이 바뀐걸까.
감독인 내가 잘못된 탓이 분명하다.
나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겁쟁이 쫄보가 됐네.
행동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앞서, 행동이 가져올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테다. 이제 더 이상 그저 아프다고, 상처받았다고 울며 달려가 부모님 품에 안기던 어린아이가 아니니. 그 대신 내게는 내 품에 울며 달려드는 어린아이가 둘이나 생겼고, 이제 내 역할은 부모로 전환되었다. 나의 놀란 마음은 괜찮지 않음을 숨기면서도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괜찮다고, 이걸로 또 하나 배운 거라고 끊임없이 토닥여주는 손길에 몰래 슬쩍 가시지 않은 내 떨림을 실은 채로.
얼마 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스위스 티치노(Ticino)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 정한 목적지였는데, 여기서도 앞서 말한 달라진 내가 튀어나왔다.
산에서 내려온 차가운 계곡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며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녹음 가득한 산, 들과 더불어 초록빛으로 굽이치는 계곡물의 조화. 오묘한 빛깔로 잘 깎여 다듬어진 바위가 한데 어우러져 이제껏 내가 본 스위스 여름 풍경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힐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곳이 있었으니, 돌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뛰어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올라섰다 내려왔다 반복하길 여러 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몇 초간 곧게 서있더니 외마디 비명도 없이 몸을 던졌다. 뒤이어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참고로 이 날의 물 온도는 10도였다.
서커스 구경마냥 정신 없이 바라보던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엄마도 저렇게 뛸 수 있어?”
설마했던 질문이 기어코 나오고 말았다.
“그럼, 엄마도 뛸 수 있지. 그런데 오늘은 수영복을 못 챙겨왔네? 다이빙하러 다음에 또 오자!”
내겐 그럴싸한 핑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뛸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차가운 물 온도 탓에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는 상황 설정도 있었지만, 물이 따뜻했을지라도 섣불리 뛰어내리지 못했을거다. 물론 예전의 나라면 돌다리 위 다이빙 포인트까지는 자신 있게 올라섰을 테지만.
머릿속 이런저런 생각들로 허공을 떠돌던 내 시선이 한 남자아이에게로 꽂혔다.
이래서 젊음인가싶게 연거푸 다이빙 놀이에 한창이다.
포즈도 점점 그럴싸해진다.
한 마리의 날아오르는 새처럼 그야말로 비상하듯 몸을 던지던 아이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몇 년만 지나면 우리 아이들의 모험도 본격 시작될텐데, 벌써부터 대견하고 부러워지던 순간.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용기들을 내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뛸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진 대신, 보다 더 안전해진 것일지도. 이제는 아이들의 용기에 대응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을 더 키워야지. 그리고 위험이 따르는 행동에 대한 용기 대신, 행복한 삶을 살아나는데 필요한 새로운 지혜와 용기들로 채워나가야지 싶던 순간. 이유 모를 뜬금없던 산책길 고백이 뭉게뭉게 퍼져 다짐으로 다져진 이번 여름.
@ 2018년 8월 여름날, Tic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