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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paris Sep 07. 2018

뛸 수 있는 용기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

친구와의 산책길, 툭하고 던진 고백에 턱하니 맞장구가 쳐진다.


아내와 엄마가 된 현재.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만이 아니어서일까. 지킬 게 많아져서일까. 일단 저지르고 보자 했던 내가 이제는 ‘그랬을 때 발생할 위험은 어쩌지’부터 생각하고 있다.

내가 너무 낯선 순간들이 훅하고 찾아온다.


초등학교 겨울 방학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받았던 스키 강습은 당일 중급 코스를 혼자 쌩하고 내려오던 순간의 장면으로 기억이 생생한데.

어째서 4년 전, 철저하게 내 의지로 받은 개인 스키 강습은 강사에게 매달리다시피 진땀 빼며 내려온 장면으로 연출이 바뀐걸까.

감독인 내가 잘못된 탓이 분명하다.

나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겁쟁이 쫄보가 됐네.


행동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앞서, 행동이 가져올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테다. 이제 더 이상 그저 아프다고, 상처받았다고 울며 달려가 부모님 품에 안기던 어린아이가 아니니. 그 대신 내게는 내 품에 울며 달려드는 어린아이가 둘이나 생겼고, 이제 내 역할은 부모로 전환되었다. 나의 놀란 마음은 괜찮지 않음을 숨기면서도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괜찮다고, 이걸로 또 하나 배운 거라고 끊임없이 토닥여주는 손길에 몰래 슬쩍 가시지 않은 내 떨림을 실은 채로.




얼마 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스위스 티치노(Ticino)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 정한 목적지였는데, 여기서도 앞서 말한 달라진 내가 튀어나왔다.



더운 날에도 물 속보다 물 밖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찬 물 온도 탓이다.


산에서 내려온 차가운 계곡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며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녹음 가득한 산, 들과 더불어 초록빛으로 굽이치는 계곡물의 조화. 오묘한 빛깔로 잘 깎여 다듬어진 바위가 한데 어우러져 이제껏 내가 본 스위스 여름 풍경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힐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곳이 있었으니, 돌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망설임의 순간.
뛰어내리는 용기의 실천.


뛰어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올라섰다 내려왔다 반복하길 여러 번.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몇 초간 곧게 서있더니 외마디 비명도 없이 몸을 던졌다. 뒤이어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참고로 이 날의 물 온도는 10도였다.



돌다리 위 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다이빙 장소.


서커스 구경마냥 정신 없이 바라보던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엄마도 저렇게 뛸 수 있어?”


설마했던 질문이 기어코 나오고 말았다.


“그럼, 엄마도 뛸 수 있지. 그런데 오늘은 수영복을 못 챙겨왔네? 다이빙하러 다음에 또 오자!”

내겐 그럴싸한 핑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뛸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차가운 물 온도 탓에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는 상황 설정도 있었지만, 물이 따뜻했을지라도 섣불리 뛰어내리지 못했을거다. 물론 예전의 나라면 돌다리 위 다이빙 포인트까지는 자신 있게 올라섰을 테지만.





머릿속 이런저런 생각들로 허공을 떠돌던 내 시선이 한 남자아이에게로 꽂혔다.

이래서 젊음인가싶게 연거푸 다이빙 놀이에 한창이다.

포즈도 점점 그럴싸해진다.

한 마리의 날아오르는 새처럼 그야말로 비상하듯 몸을 던지던 아이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몇 년만 지나면 우리 아이들의 모험도 본격 시작될텐데, 벌써부터 대견하고 부러워지던 순간.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용기들을 내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뛸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진 대신, 보다 더 안전해진 것일지도. 이제는 아이들의 용기에 대응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을 더 키워야지. 그리고 위험이 따르는 행동에 대한 용기 대신, 행복한 삶을 살아나는데 필요한 새로운 지혜와 용기들로 채워나가야지 싶던 순간. 이유 모를 뜬금없던 산책길 고백이 뭉게뭉게 퍼져 다짐으로 다져진 이번 여름.


@ 2018년 8월 여름날, Ti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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