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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paris Sep 14. 2018

스위스 주말 하이킹

지극히 스위스 풍경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는 항상 이웃들과 함께였다. 부모님의 친구, 동네 아줌마, 동네 아이들. 밤을 제외하고 우리 집 현관문은 항상 열려있다시피 했었고, 나 또한 친한 이웃집들을 내 집 드나들듯 했었다. 주말이면 가족만큼 친해진 이웃들끼리 함께 나들이며 캠핑이며 참 많이도 돌아다닌 덕에, 동네 아이들은 내 형제자매만큼이나 가까웠었다. 그땐 자연스러웠고, 지금은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 그 일상.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문득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뭐랄까, 더 이상 내가 가질 수 없는 일상이 된 것 같아 아쉬워서랄까. 내 아이들에게 그와 비슷한 경험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였을까.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게 뭐라고, 스위스 생활이 퍽이나 서글퍼질 정도였다.


더 이상 내 부모님도, 친구도, 지인들도 모두 사라진 이 나라에서 나 자신이 한없이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던 때였다. 어떤 날은 ‘엽서의 나라’라고 불리는 스위스에서의 삶에 황홀해하면서도, 그다음 날은 내가 엽서 속 배경 인물이 되는 대신 한국에서 누리던 일상의 행복들을 맞바꾼 것만 같은 심정에 슬퍼했다. 심할 때는 반나절 사이에 내 처지를 향한 내 시선이 수십 번도 더 이리저리 널뛰었다.

그 때의 나는 문득, 혹은 자주 그러했다.

그런 불안정한 마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겹겹이 쌓여 펑 하고 터뜨릴 요소로 끄집어낸 기억이자 핑계였으리라.


그 후로 2년이 지난 현재,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던 순간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물론 유독 요리하기 귀찮은 날 한국의 배달음식이 떠오르는 것은 여전하다. 아무런 의미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속으로 메뉴 고민까지 이어나가지만 이내 시무룩해지던 마음까지 뒤따라오진 않는다.

내가 비로소 정착했구나 싶다. 드디어 이곳이 온전한 내 집이다 느껴져서겠지만, 여하튼 긍정적인 변화겠거니 받아들이고 감사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비로소, 앞서 언급한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도 더 이상 씁쓸해하지 않게 되었다.



글라루스(Glarus) 주에 위치한 Mettemanalp 호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
다함께 하이킹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다시피하는 모임이 있다.

시작은 첫째 루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부터인데, 한국의 아기 엄마들도 대게 그러하듯 어린이집 학부형들 중 마음 맞는 이들의 소그룹 모임이 어느덧 2년 넘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 중 스위스인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들 여기에서 평생을 보내겠다 마음먹은 외국인들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큰 위안이자 활력소다.

때문에 여러 활동들을 계획하기도 좋아하는데, 지난 주말엔 아이들과 남편을 포함한 온 가족이 다 함께 떠나는 하이킹이 주제였다.


초보 운전자들을 겁주기에 제격인 낭떠러지 옆 좁고 구불 한 산길을 올라 이른 아침부터 5가족이 모였다.

어른 10명, 아이 9명으로 꽤나 규모 있는 하이킹 그룹이었다.


아이들이 걷기에 최적인 코스로 선정했다.



스위스 하이킹하면 딱 떠오를만한 그런 경치 바라보며 걷고, 또 걸어도 아이들 중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게 만드는 그룹의 힘.



바비큐 장소에 도착 하자마자 시작되는 수다.
바비큐 준비



풀밭에 털썩 앉아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놓기도 전에 아이들은 벌써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조금 큰 어린이들은 저마다 숲 학교에서 배운 방법을 실천해가며 바비큐 준비를 하고, 우리 집 애들을 비롯한 꼬맹이들은 그저 옆에서 큰 아이들 따라 하기에 바쁘다.


스위스 어딜 가나 숲이든 호숫가든 건조한 날만 제외하고 바비큐는 자유롭다. 심지어 바비큐를 위한 장작마저 고운 자태로 한가득 준비되어 있다. 참 스위스다운 준비성이다.



각종 소시지들이 한창 익어가는 중.


산, 물, 하늘, 구름 어느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그야말로 완벽했던 초가을 주말 오후.





왜 야외에서 먹는 건 뭐든 더 맛있는 건지,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라 유독 그러했다.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우리 모두에게 참 행복했던 시간.



다시 힘내서 호수 한 바퀴 다 돌기.



호수 한 바퀴를 다 돌고서도 놀이터에서 한참을 뛰어놀고 나서야 케이블카 타고 내려가는 데에 따라나선 아이들. 매번 느끼지만 이럴 때의 강철 체력은 아이들 따라갈 수가 없다.


헤어지기 전의 19명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꽉 찬 행복이 묻어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헤어지는 인사 속에 정기적으로 떠나자는 우렁찬 다짐들이 넘실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이들은 곯아떨어졌고, 나와 남편은 연신 “참으로 알찬 일요일이었어”라며 기쁨 가득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날 만큼은 내가 스위스 엽서 속 배경 인물이 아닌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내 아이들도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채워나갈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이 밀려와 스위스 삶의 행복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던 날, 지난 일요일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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