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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라리 Mar 28. 2020

불쑥 찾아온 손님 : 내재된 상처

한 밤 중에 찾아온 나의 오래된 손님, 머물다 가세요.

꿈을 꾸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이 서른이 가깝도록 꿈을 꿈이라고 깨닫고 마음껏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어째서인지 나는 꿈에서 고등학생쯤 되는 듯했고, 갑자기 내리는 비로 인해 칼칼해진 목을 잠재우려 따뜻한 물 한 잔을 컵에 담고서는 반으로 향했다. 교실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기시감. 반 친구들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책상에 앉아 곧 시작될 장마를 걱정했다. 

     

그때 내 자리 주변의 친구들로 보이는, 꿈에서 아마 나의 절친들이었던 친구들이 마치 나를 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나는 배제된 대화들이었다.     


 “그럼 오늘 저녁부터 시작할까?”
 “응. 어쩌면 자기도 알고 있을걸?”     


대충 이런 대화였다. 꿈에서의 대화라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마치 왕따를 모의하는 대화가 내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눈치가 빨랐던 나는 꿈에서도 그 대화 속의 ‘자기’가 나라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물었다.      


“지금 내 얘기하는 거야?”     


주동자 같은 아이가 나를 보고 씩 웃고는 “거봐. 알 거라 그랬지?”라며 제 주변의 친구들의 어깨를 툭 쳤다. 때마침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이었는지 그 아이들은 우르르 일어나더니 서로 팔짱을 끼면서 나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는 너 혼자 급식 먹게 될 거야.”     


같이 급식을 먹을 친구가 없다는 것. 학창 시절에는 그게 왕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 그 아이를 보며 말했다.     


“OO아 내가 너한테 왕따 당하는 게 벌써 두 번째네”     




그 대화를 끝으로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어나자 비로소 그 주동자 아이의 얼굴이 생생해졌다. 반가운 사이는 아닌데 참 오랜만이었다. 생뚱맞게 무슨 꿈인가 싶으면서도 꿈이란 걸 알았으면 그 아이의 머리끄덩이를 확 싸잡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가, 한참 전에 당했던 왕따를 꿈에서 왜 또 당해야만 했는지 억울했다가, 마지막으로 그 아이에게 날린 말이 하필이면 두 번째 당하는 왕따임을 고백했다는 사실에 신경질이 났다. 현실이 적당히 비굴하면 꿈에서라도 당당할 수 있게 해주지. 누군가에게 비는 소원인지도 모를 내용들을 속으로 삭혔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한번 내재된 상처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꿈에서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사실 내가 그 무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건 초등학생 때 일이었다. 요즘처럼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가미된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왕따였다. 진정한 우정이란 게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이자 시기와 질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미성숙한 나이었던 우리는 왕따의 타겟을 돌려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노희경 작가님의 명대사를 새삼 일찍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왕따를 당했던 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필이면 재수 없게 졸업 전 마지막 타겟이 ‘나’였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가 달라지고 함께 놀던 무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생이별 아닌 생이별을 하게 된 것뿐이라고.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주동자 아이들이 단체로 일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고서는 말이다.      


물론, 왕따를 당했던 그 당시에는 이렇게 의연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다 같이 어울려서 놀 타이밍인데, 끝나지 않는 왕따에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무엇보다 왕따 문제로 부모님까지 학교에 오시면서 나의 왕따 소식이 나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를 걱정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의연한 생각을 하기보다 괜한 걱정을 보탠 것 같은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집과 학교에서 왕따로 인해 주눅 들고 눈치 보던 그때, 그 순간들은 나도 모르던 사이에 마음속 깊이 상처로 자리 잡았나 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끔씩 쿡쿡 찌르는 내재된 상처.

      

내재된 상처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찾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내재된 상처가 내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표면 위로 올라오면 오히려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버린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상처를 기억으로 저장한다. 내재되지 않도록. 다시는 내 발목을 잡지 못하게.     

  

내재된 상처를 하나씩 발견하는 만큼 사람은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나는 오늘 한 칸 더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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