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후기] 송주연 저, <질병과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때>
"작가님! 오늘 온라인 서점에 책 등록되었어요. 홍보용 사진들도 보냅니다!"
4번째 책이 세상에 나온 날. 출판사에서 책을 알리기 위해 만든 이미지들을 톡으로 보내왔습니다. 저는 얼른 카톡 프사부터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의 새로운 책 소식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이전의 세 권의 책을 냈을 때의 축하 일색이었던 것과는 반응이 좀 달랐습니다. '축하하는데, 축하할 일이 맞는 건지?' 이런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축하는 해주는데 동시에 놀라움과 걱정 어린 마음이 함께 느껴집니다.
사실 그럴 법도 합니다. 11월 출간된 저의 책 <질병과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때>는 제가 지난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질병의 세계에서 바라본 마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출간 소식으로 제가 암 환자임을 알게 된 분들은 얼마나 당황하셨을까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는 지인들의 마음에 대한 답으로 제 책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반응①] "야, 나 너무 놀랐잖아. 괜찮은 거지?"
제 소식을 몰랐던 친구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인 것 같아요. 멀리 떨어져 살면서 몇 년에 한 번 안부를 묻고 지내는 친구도,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알게 된 동료 선생님도 제 카톡 프로필을 보더니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많이들 놀라셨죠? 저도 그랬어요. 아직도 가끔은 제가 암 환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꿈'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암은 제 삶에 들어왔고, 저는 하루 두 번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하고, 6개월마다 검사를 받으며 암을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른쪽 유방을 수술했더니 오른쪽 팔은 편안하게 움직여지지가 않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약을 먹을 때마다, 오른팔이 당길 때마다, 검진 일이 다가올 때마다 제가 '암 환자'라는 걸 진하게 체감합니다.
그런데요, 저 괜찮습니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처음엔 "왜 내게?"라며 자책하고 괴로워했었어요. 하지만,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암은 제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제게 왔을 뿐임을 깨달았어요. 제가 만난 암 환우들 중에는 운동하고, 식단 관리하고 명상하시는 분들도 있었으니까요.
암이 '그냥' 왔다는 걸 알아차리자, 사회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안이 느껴졌어요. 바로 인간 실존의 조건인 죽음과 질병, 노화에 대한 불안 말이죠. 이 불안을 밀어내고자, 사람들은 누군가가 아프면 '당사자에게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원인만 제거하면, 마치 자신은 아프고 늙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요. 하지만, 제가 경험하고 있듯 아프고 늙어가는 일은 언젠간 그냥 오고 맙니다.
갑자기 암이 찾아오는 바람에 저는 이 실존의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용전념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진실, 그러니까 삶의 많은 부분은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고'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상담 심리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수용전념치료'에서는 우리가 반대로 여겨왔던 것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건강과 질병 등이 반대가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 안을 때 진실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요.
정말 그랬답니다. 저는 암을 받아들이고,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좀 더 자유롭고 평온해졌어요. 그래서 책에서 '그러나' 대신 의도적으로 '그리고'라는 접속어를 사용했습니다. '아픈 것과 괜찮은 것'이 반대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의미로요.
[반응②] "그 와중에 책을 쓰다니. 넘 대단"
이건, 제가 암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던 가까운 지인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었어요. 칭찬인 거 알지만, 저는 이 말엔 '반대' 합니다.
저는 상담심리사이고 동시에 뭐든 글로 써야 제 마음이 정리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글도 송고하고 있고, 브런치도 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도 씁니다. 글 쓰는 시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암에 걸렸다고 이런 걸 다 못하게 될까요? 전혀 아니에요. 사실, 암 선고를 받고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암 때문에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었어요. 상담자로서, 작가로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서 제가 소중하게 여겨왔던 일상의 조각들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저다운 일상은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암 치료 중에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더라고요! 치료받느라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피로감 와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조금은 여유 있게 마음먹으면서 오히려 '저 다울' 수 있었어요. 이런 제게 책을 쓰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다른 환우들도 마찬가지였지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이를 챙기고, 출근도 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고, 때로는 통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자기 자신' 답게 병과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삶 속에 질병이 있듯, 질병 가운데서도 삶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서 '암 생존자' 대신 '암 경험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생존'은 왠지 살아남는 것만 중요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경험'은 암이라는 병을 삶 속에 통합해 내고 각자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잖아요. '암 경험자'라는 말 어떠세요? 뭔가 암을 수용하면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나요?
[반응③] " '건강이 최고'라고 써 줘!"
출간 후 친한 이웃이 고맙게도 책을 구입해서 와 제게 책에 사인을 요청하며 건넨 말입니다. 건강'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요 아프면서 저는 '건강이 최고'라는 말에는 반감이 생겼습니다. 평생 건강하게 살면 제일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저처럼 암에 걸리기도 하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을 가지고 살기도 하고, 어딘가를 다쳐서 장애를 안고 지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피해 가더라도 나이가 들면 단지 노화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프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이 최고' 그러면 정말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어주었습니다.
'아파도 괜찮은 세상!'
어때요? 누구나 아프게 되는데 아픈 사람도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어떨까요? 아플 때 마음껏 돌봄 받고 의존할 수 있고, 일터에도 돌봄이 전제되어 있다면, 아픈 사람들도 형편껏 세상에 기여하면서 좀 더 괜찮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픈 사람이 살기에 괜찮은 사회라면, 건강한 사람들도 당연히 더 살기 좋아질 거예요. 장애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무장애 공원'이 장애가 있는 분들 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걷기 좋은 곳이 되듯이 말이죠.
저는 책에서 '질병 중심 세상'을 제안했습니다. '건강'이 중심이 아닌 '질병'을 중심으로, 모두가 아프고 돌봄 받고 의존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 사회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아픈 이들과 건강한 이들 모두가 더 잘 살게 될 테니깐 말이죠!
책이 출간된 11월은 암 수술 후 세 번째 정기검진이 있는 달입니다. 이전 검진까지는 검진 날짜면 보면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기침이나, 두통 같은 작은 사인도 '전이'나 '재발'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면서 불안에 휩싸이곤 했죠.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 불안하긴 하지만, 이 불안을 밀어내지 않고 '그럴 수 있다' 받아들이면서 이전보다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요.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 정리한 것들을 기억해 내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삶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길, 혹시라도 질병 때문에 마음이 힘드신 분께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