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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굳찌 Feb 27. 2023

돈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일까?

나의 영수증일기002

축의금 논쟁 뉴스를 처음 접하고, 잠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축의금 적정액수에 대한 교수님의 조언을 실은 기사였다. 아니 뭐 그런 것까지 교수님 어드바이스가 필요하단 말인가? 기가 막혀 읽어 보았다. 그런데 읽어보니 좀 납득이 갔다.


그러고는 곧 한국 들어오자마자 있었던 후배의 결혼식 축의금 액수를 떠올렸다. 다행히(?) 집안 행사와 겹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낸 축의금은 적정선 범위 안에 들었다. 만약 축하하러 그 돈을 들고 예식장에 갔다면, 상식 없는 인간이 될 뻔했다. 사실 나는 돈만 보내서 미안했는데... 알고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


예식장 평균 식대가 6만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슬프게도, 우리는 예식 행사의 수지타산이 안 맞아 3만 원짜리, 5만 원짜리 축의금에 화를 내는 사회가 됐나 보다. 원래 축의금이란, 큰 잔치를 치르는데 십시일반 하는 의미도 있지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했던 것이 아닌가?


작지만 당신의 큰 기쁨을 축하한다, 작지만 당신의 큰 슬픔에 위로를 보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전함으로써 상대방의 기쁨이 커지고 슬픔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라고 돈을 쓰는 것 아니었던가? 기사를 보니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일상에서 마음을 위해 돈이 움직이는 경우는 흔하다.

아마추어 화가 친구의 화랑에서 그림 한 점 사는 일...

맛있는 치킨집 치킨을 한 마리 사려다가, 부모님께 드리려고 두세 마리를 사는 일...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일...

같은 곳 같은 사무실인데, 간판을 새로 달았다는 아빠를 위해 개업축하 화분을 보내는 일...


돈과 마음.

가끔은 돈이 마음의 크기를 좌지우지하는 푯대가 되고...

가끔은 마음과 상관없이 돈만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그 돈이 보내온 커다란 마음만 보이기도 한다.





1. 과유불급 예외조항

***농원/ 2022년 11월 27일/ 5만 원

갑분 2022년?!

어이가 없어서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수증이라 기록하기로 한다.


이날 나는 양재동의 한 화원에서 '돈나무'랑 '난'을 샀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사무실이 새 단장을 했기 때문이다. 사무실 이름이 바뀌는데도 개업식 때처럼 꽃을 보내야 하는지 확신이 들진 않았지만, 엄마가 하라고 하시기에 동참했다. 한국에 오랜만에 와서 느끼는 건, 기쁜 날이나 슬픈 날, 혹은 중요한 날에 '마음을 표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다.


화분을 하나만 할까 하다가 혹여 초라해 보일까 싶어 엄마 따로, 우리 부부 따로, 동생네 따로 보냈다가 아버지한테 한소리 들었다. 좀 과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을 표시하는 일'에는 과유불급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2. 돈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다

***점/ 2022년 12월 6일/ 93만 원


한국에 와서 가장 큰돈을 쓴 날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내가 쓴 돈이 아니다.

대체 엄마 영수증은 왜 내가 가지고 있는 거야?


돈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 같다.

나한테 93만 원을 쓰기란 쉽지 않다. 큰맘 먹어야 쓸 수 있는 돈이다.

나도 엄마가 된 이후로 꽤 오랫동안 그렇게 큰 금액을 나를 위해 쓰지 못했다.

그럼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나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을 위해 써야 할 소용이 있기 때문에 보류했을 뿐이다. 그것이 불행이라거나 미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는 언제나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나는 행복한 소비자였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소비가 극단적이 되면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가장 행복한 소비가 된다. 물론, 사랑 앞에 미련해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너무 사랑하면 자꾸 미련해질 정도로 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런 엄마의 소비 앞에 화를 냈다. 그 돈 엄마한테 쓰라고! 엄마 거 사라고!!

나이가 드니 화를 낼 수가 없다. 정확히는 엄마가 된 이후로 화를 낼 수가 없게 됐다.

자식의 안위와 행복은 포기할 수 없는 소비의 목적이자, 부모의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네가 안 추워야 내가 마음이 놓인다.'


엄마가 된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이 많은 딸은 엄마가 사주신 비싼 패딩점퍼를 염치없이 받아 든다.



3. 뭘 한 건데?

##주유소/ 1월 31일/ 5천 원


대체 주유소에서 뭘 한 걸까? 5천 원이라니... 주유를 오천 원 치만 했을 리는 없고.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쿠폰 가지고 세차를 했나? 그랬겠지?



4. 입구영업소: 여주

한국도로공사/ 2월 1일/ 1천6백 원


남편이 여주에 다녀온 날인 것 같다. 그런데 "입구영업소"는 무슨 말이지?

입구에서 돈을 벌어 입구 영업소인가? 그러니까 한국도로공사에 내는 통행료는 모두 "영업소"에서 담당하니까 입구영업소인 모양이다. 투자(도로를 만듦)할 때 엄청 큰돈을 들인 후, 수익(통행료)을 꾸준히 얻는 국가의 안정적인 돈벌이!! 새삼 감탄스럽네. 우리나라, 부자 되세요~



5. 하루 16번 일몰 하는 세상

#마트/ 2월 8일/ 3천2백 원


'스타벅스더블샷크림 275'를 마셨다.

영수증에 쓰인 이름을 보니 미래 우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블샷 크림 뒤에 275라니!

숫자가 붙은 음료를 마신 거다. 그 뒤에 '라테'라던가 '카푸치노'가 붙었다면 매우 현재 지구인스러운 기분이 들었을 텐데! '더블샷크림 275'를 마시니, 우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지구인스러운 이름이지만, '아아388'이나 '민트모히토 913' 같은 이름은 아무래도 미래스럽지 않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20)'를 봤을 때가 생각났다. 레이가 음식을 사던 장면을 떠올렸다. 말려서 진공기로 압축해 놓은 듯한 그 음식은, 대체 무슨 음식인지 생김새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오직 생존만을 위한 음식 그 잡채였거든! (이런 포인트에 인상 깊었다는 것이 왠지 창피해 아무한테도 말한 적은 없다) 그런 음식에는 이름보다는 번호가 어울려 보였다.


아무래도 어제저녁 뉴스에 아랍애미리트(UAE)에서 첫 여성 우주인이 우주로 갈 거라고 보도한 걸 인상 깊게 봤던 부작용(?)으로 도래한 생각 같다.


아랍권 최초 여성 우주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누라 알마트루시. 무함마드빈라시드우주센터 트위터.

  

우주에서는 하루에 해가 16번 뜨고 진다고 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나온 또 다른 아랍 우주인은 우주에서 '라마단'을 어떻게 지킬지가 관건이라고.

내가 알기로, 이슬람 사람들이 지키는 라마단 금식기도는 해가 지기 전까지 물을 포함한 일체의 금식을 한다. 해가 진 후에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데…

하루에 16번이나 해가 떴다 졌다 하면...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되는 건가? 기준 자체를 '해가 뜨고 지는 것'에서 바꿔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건데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금식은 둘째 치고, 잠은 언제 자고 식사는 어떻게 하는 거지?

하루 16번의 해가 지고 떠도.. 식사는 세 번만 하면 될까? 하루 열여섯 번의 일출과 일몰을 보면 어느 타이밍에 잠을 청해야 하나? 행여 미치지나 않을까? 나는 정말 우주를 너무나 가보고 싶다가도... 16번의 일몰을 볼 자신이 없기도 하다. 하루 이틀이야 신기하고 괜찮겠지만, 6개월간 96번의 일출을 보고도.... 제정신이겠지?  


6. 커피 중독

#마트/ 2월 11일/ 2천3백4십 원

파이크블랙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줄여야 하는데...

작년보다는 훨씬 많이 줄였다. 누군가에게 '커피 중독' 아니냐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아니라고 강력 부인했는데 영수증을 보다가 생각했다.


'나, 커피 중독인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고 싶었다. 작년까진 있었다. 한국에 오면서 처분했고 다시 사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커피를 줄이고 싶어서. 커피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건강관리가 올해 목표니까.

그런데 편의점과 커피점을 번갈아 들락거리면서 아직까지는... 커피를 거의 매일 마시고 있다.


7. 서울 호떡

마켓*단/ 2월 12일/ 1만 3천 원


남편이 간식으로 호떡을 사 온 날이다.

물론 냉장 호떡이라 집에서 구워 먹어야 한다. 귀찮다.

맛도 내가 기억하던 호떡과는 사뭇 다르다.


어릴 땐 호떡을 현금으로만 살 수 있었다. 호떡 할머니가 동네 입구에서 200원인지 500원인지 받고 팔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나 할머니에게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같은 건 없었다. 호떡 할머니는 커다랗고 네모난 철판 위에 기름을 잔뜩 부은 채로 호떡을 튀기듯 구웠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없는 호떡 누르개(?)로 동그란 반죽을 납작하게 눌렀고 잠시 후에 뒤집었다. 다 구워진 호떡들은 한쪽 옆으로 나란히 밀어뒀다. 그리고 미리 잘라놓은 신문지를 한 움큼 집어 들고 호떡을 겹겹이 싼 후 주문받은 순서대로 나눠줬다.


호떡 할머니는 호떡을 구우면서도 누가 먼저, 몇 개 주문했는지 다 알았다. 하교 시간에 아이들이 몰려 아무리 바글거려도 빼먹고 돈을 안 받는 일은 없어 보였다. 호떡을 건네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받은 돈을 바로바로 돈주머니에 넣었다. 한 손으로 지폐를 넣고 손을 우물우물거리다가, 딱 정확한 액수의 잔돈을 건넨다. 마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숙해 보였던 호떡 할머니의 얼굴은 호떡을 팔기 위한 '마케팅용 표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민첩한 돈 계산 장면은 호떡 뒤집는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이었거든.

아무튼 호떡은 냉동버전 보다는 전문가가 구워야 제 맛이다.

백화점 지하에서 호떡 구워주는데 발견!



8. 이웃의 고통

튀르키예 ***/ 2월 22일/ 30만 원


2023년 2월은 개인적으로도 힘든 달이었지만,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극도 있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소식이었다. 잠깐 흔들리고 마는 지진이 아니었다.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장면들이 뉴스 화면 속으로 중계됐다. 건물이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은 평범한 일반인들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수준이었다. 어떤 아버지는 폐허 속에서 죽은 자식의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펑펑 울어 버렸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생명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떤 노인 부부는 구조되었지만 두려움으로 6일 동안 잠을 한 숨도 못 잤다고 했다. 노부부는 모두 잃은 천막 안에서 연약한 서로를 의지해 기대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돕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큰 부자들은 이재민들을 위해 큰돈을 보냈다고 했다. 내가 송금한 돈은 평소에는 큰 돈인데, 튀르키예의 고통과  큰 슬픔에 비해 너무 작아서 우주의 티끌 같이 느껴진다. 그래도 생수 몇 박스, 담요 몇 장이라도 전해질 수 있겠지. 제발.

튀르키예 구호물품 나누는 현장 사진 (튀르키예 선교사님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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