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7 <우리의 세계> 리뷰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은 텍스트를 매개로 텍스트 안팎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텍스트클럽의 관객, ‘텍스트클러버’는 창작물과 창작자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창작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일방향의 경험이 '읽고 나누는' 쌍방향의 입체적 경험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합니다.
글 | 우주
사진 |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시즌 1은 복잡한 변화 속에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 변화 속에서도 지켜가고 싶은 것에 주목했습니다. 시즌 1의 마지막 클럽은 김소영 작가님과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맺음의 순간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꾸렸습니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으로, 우리로 세계를 넓혀가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바탕으로, 나와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마음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의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웃음이 가득했던 일곱 번째 텍스트클럽의 면면을 전해드립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197쪽
유희경 시인 (이하 ‘유'): 독서교실 선생님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요.
김소영 작가 (이하 ‘김'): 독서교실 어린이들은 제가 작가라는 사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쓸 때 팔이 아프지 않냐’, ‘쓰는데 얼마냐 걸렸냐’ 같은 것을 궁금해해요. 이전 책도 자기 이름이 나올 때만 좋아했거든요. 이번에는 실명을 안 썼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름도 안 나오는데 무슨 소용인가.’ 해요. (웃음)
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우리’라는 틀을 좁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한 뼘 정도 늘어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저는 서점을 하다 보니까, 어린이 손님들을 대할 때 태도가 달라졌어요. 내가 정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범주에 어린이를 탈락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단어만은 꼭 가져야 한다면 무엇일까요?
김: 방금 시인님이 쓰신 단어 중에 제 마음속에 늘 새기고 있는 단어가 있었어요. 단어를 꼽자면 ‘어려움'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어린이를 계속 어려워하는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전히 어렵고요.
어린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을 했다면, 예를 들어 노인 복지 일을 한다면 ‘내가 노인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타자를 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니까, 어려움은 계속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제가 신입생을 받았는데요. 새로운 어린이를 만날 때 저도 긴장하지만 새로운 활력이 생겨요. 그 어린이에게 잘 보이려고 이번 주에 꼭 나눠야 할 이슈나 수업을 좀 더 준비하고, 한번 더 점검하게 돼요. 서점 고객 중에 어린이가 있다면, ‘어린이에게 잘 보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어렵게.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위선이라고 하는 말도 이해가 가요. 어색하니까요. 그런데 예의나 격식을 차리는 건 원래 어색한 일이죠. 인간의 본능은 아니잖아요. 조금 어색하지만 하다 보면 괜찮아지고, 어린이들도 반기기 때문에 위선을 유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웃음)
텍스트클럽은 행사 전, 텍스트클러버의 사연을 미리 받은 후 행사 동안 함께 나누고, 작가님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중요하게 다룹니다. 사연이 당첨된 분은 작가님이 준비한 특별 선물까지 받아가시지요.
이번 텍스트클럽에서는 탐스러운 작약 몇 송이를 선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어린이’를 떠올리면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박하고, 정답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린이들도 고급스럽고 예쁜 걸 좋아하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꽃과 어린이가 잘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여 말씀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꽃을 받아간 텍스트클러버는 나무, 닌텐도 등의 소재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사연에 작가님께서는 ‘나에게는 여러 스펙트럼이 있고, 그것의 총합이 나의 삶인 것 같다'는 대답을 돌려주셨습니다.
김: 이 사연을 보고 저도 약수터에서의 작은 모험이 떠올랐어요. 유년기의 기억 중에 ‘그게 어떻게 생각나지?’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요. 그걸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어린이한테도 어떤 장면이 평생 갈지 모르겠어요. 유명한 식당에 갔거나 신나게 놀았던, 특별한 경험도 장면은 남아있지만 어딘가의 이정표 같은 이상한 장면도 마음에 남아있거든요. 저는 어린이들에게 어른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니까, ‘어린이가 늘 보고 있으니 신호등 앞에서도 항상 멋있게 서있자’고 말씀드려요.
사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뛰어 놀기도 했고, 열심히 공부도 해봤고, 만족도 해보고, 실망도 해본 기억도 있고요. 텔레비전에 들러붙어 있었거나 늦게까지 자다가 엄마한테 혼난 기억도 있겠죠.
그런 기억이 아직도 떠오를 만큼, 어린 시절의 삶과 지금 어른의 삶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중학생 때는 어땠고, 고등학생 때는 어땠고. 이렇게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서 어렸을 때의 내가 오늘까지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어린 시절을 잘 되살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세상에 태어난 조카를 바라보며 본인의 어린 시절과 상처를 돌아보았다는 두 번째 텍스트클러버의 사연에도 긴 이야기가 따라붙었습니다.
김: 출간 후에 ‘이 책에는 행복한 아이만 나오는 것 같다’, ‘작가님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좋은 부분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내 어린 시절과 화해하거나 더 생각하기 싫다’는 피드백도 들었어요.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한 바람에 마주한 장면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 말씀들을 이해해요. 잠 못 드는 밤도 있었고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발견한 건 어른이 되어서 어떤 기억을 남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예요. 좋은 순간, 별로인 순간 중 어떤 것에 중심을 둘 지를요. 어떤 기억은 굉장히 아프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 기억이고, 어떤 기억은 되게 작은 순간이지만 더 좋게 확대해석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결정을 내가 내릴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추억이 아름답게 보정될 수 있더라고요. 있는 그대로를 꼭 같은 것으로 간직하는 것만이 추억을 (오랫동안) 가져가는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아함경>이라는 책에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나온대요. 첫 번째 화살이 날아와서 맞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내가 쏘는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처음 생긴 상처는 어쩔 수 없는데도 그걸 계속 들여다보면 볼수록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나에게 쏜 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는 첫 번째 화살만큼만 아파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기억 때문에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게 괴롭다면, 담대하게 기억을 과장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일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린이를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어른이 되는 데 있어서 어린 시절을 꼭 되짚어야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내 어린 시절이 완벽해야만 하거나, 화해해야만 하거나, 마음이 건강한 상태여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체질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서체가 다 다른 것처럼, 어린 시절의 지문이 다 다른 형태인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53쪽
처음 보는 어린이, 자주 보지만 거리를 지키는 어린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반말이나 존댓말 중 어떤 방식으로 인사를 할지 고민되기도 하지요. 많은 분들께 공감을 얻은 세 번째 사연과 답변을 통해 작은 힌트를 발견해보았습니다.
유: “저 오늘 생일이다요” 편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사하고 나서 “근데 누구세요?” 이런 얘기도 들으시죠? (웃음) 먼저 인사를 한다는 건 여러 가지 생각을 동반하게 합니다. 이 친구의 경계심을 너무 늦추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고, 저를 보고 우는 어린이도 많고. (웃음)
김: 저는 원래 인사를 잘합니다. (웃음) 다만 독서교실 하기 전에는 제가 먼저 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고요. 지금은 당연히 엘리베이터에서는 ‘안녕하세요’라고 하고, 상가나 쇼핑몰에서는 하지 않죠. 그럼 얼마나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겠어요. (웃음)
그 기준은 여러분이 어떤 어른을 만났을 때 인사할지, 안 할지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누가 먼저 타고 있다면 인사하는 게 아주 어색한 상황은 아니니까, 그 정도라면 어린이도 같은 동네 이웃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파트에 스몰토크 좋아하는 어린이가 있거든요. 그 친구는 저 만나는 걸 좋아해요. 잘 받아주니까. 몇 층 사는지 서로 아니까 얘깃거리를 잘 계산해서 말하고요. 반대로 그 어린이의 형은 저와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인사해요. 어린이들의 한 명 한 명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껴요. 그런 것들을,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생활의 표면적을 넓히는 것 같아요. 접점을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따로 웅변 안 해도 알아주시리라 믿는데, (웃음) 주변에 어린이가 없어서 나는 잘 모른다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계시죠. 그러면 제가 ‘어린이가 있다’고 외우자고 해요.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횡단보도, 텔레비전, 엘리베이터, 마트에도 어린이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연관을 맺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내 주변에 어린이가 없어, 나는 어린이를 몰라, 하고 얘기하는 것이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사회에 있는데 없다고 하니까. 그런 순간에 어린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일이 양육자나 학교의 몫으로 남겨지고 사회의 책임은 옅어지게 돼요.
덧붙여, 책 제목이 좋다고 많이 얘기해주셨는데 사실 이 제목은 편집팀 팀장이 지어주신 거예요. 제가 지었던 제목은 <어린이가 있다> 였어요. 어린이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 한편으로는 ‘어린이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게 오히려 어린이를 차별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김: 저는 ‘너무 지나치다’는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어린이는 지나친 보호가 필요하기도 하거든요. 어린이에게 너무 친절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어린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이라서요.
예를 들어 노키즈존은 차별이고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가 자꾸 ‘논의’를 하게 되죠. 스쿨존도 마찬가지예요. 학교 주변 300 미터면 어린이가 다니는 길이고, 사실 아직 학교죠. 거기에서 서행하고 주의하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법규로 정하면 되는 것인데, 차별적인 이야기까지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 걱정돼요.
폐쇄된 공간이나, 어린이를 대접해야 하는 순간에 어린이와 꼭 친해지지 않아도 되거든요. ‘어린이랑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어요’, ‘소통할 수 있어요’ 할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에요. 어린이와 친해지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이랑 안 친해져도 어린이를 잘 대해줄 수 있어요.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에게 사회적인 대우를 해주면 되는 거지, 친해야만 되는 건 아니거든요.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 존중하기 위해 뭔가 활동을 할 때 친해질 필요는 없는 것처럼, 어린이 대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을 좋아하고 친해져서만 잘 대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 제가 책을 읽고 반성한 게 있어요. 저희 서점에 있는 나선 계단이 너무 위험해서 표지판을 붙였어요. ‘어린이 분들은 어른과 같이 올라가시고, 어른이 없으면 저를 불러주세요'라고요. 책을 읽고 나서 그 표지판이, 정말 부끄럽게도, 제 눈높이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표지판을 내려 붙이는 게 존중이잖아요. 반성했습니다.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 '목소리가 작은 여성'만 손님으로 받는다고 하면 당장 문제라고 할 것을, 왜 어린이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는 걸까?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09~211쪽
텍스트클럽은 중간 쉬는 시간 없이 90분을 연이어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아무리 좋은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내내 집중하기는 쉽지 않은데, 일곱 번째 텍스트클럽은 유난히 텍스트클러버 분들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극장 뒤에서 지켜보는 저에게는 ‘집중하는 뒤통수'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파랑새극장을 가득 채운 열기에 질의시간 역시 무척 뜨거웠습니다. 현장 질문은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해둡니다.
텍스트클러버 1: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을 청소년 이후로 처음 읽게 되었는데, 어린이와 제가 재밌게 읽는 책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어린이들이 재밌어할 만한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요?
김: 저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꼭 좋은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의 고유한 영역이나 취향이 있을 테고, 어른이 잘 모르는 코드나 유행이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어른이 먼저 읽어보고, 사회적・윤리적・미학적으로 좋은 책인지 가치를 판단해보고, 어린이와 함께 나누고, 그런 책을 권함으로서 책을, 책 보는 안목을 다듬어가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독서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일하시는 어린이 자료실은 굉장히 좋은 공간이죠. 이미 어느 정도 선별된 책들이 있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성공과 실패의 경험도 가져보면서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린이에게만큼은 ‘재미있다’, ‘즐겁다’, ‘놀듯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어린이들도 유난히 어린이에게만 그런 것들을 내세운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적인 활동이라는 것, 그리고 정서적으로 나 자신을 넓혀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한다는 것이 언제나 즐겁고 쉬운 것은 아니에요. 어떤 때는 공감하는 과정에서 나를 부수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라고 하더라도 불편한 경험일 수도 있어요. 공감하지 않고 싶은데 공감이 되어버리거나 갑자기 반성을 해야 할 일이 생길 때처럼요. 어른에게도 그렇지만 어린이에게도 난감한 순간인데, 그 순간에 보호자로서, 어른으로서 같이 있어주는 게 선배 독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클러버 2: 영상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TV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린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많지만 제 성에 안찼던 것 같아요. 어린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비치고, 좀 더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작가님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민의 힌트를 얻고 싶어요.
김: ‘성에 안찬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어요. 그런 시선으로 어린이를 다루고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말씀도 반갑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생각하자면, 한 방송사에 3~5분이라도 좋으니까 어른이 들었을 때 불편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린이에게 (어른이) 듣고 싶은 말을 듣거나, 아주 극단적인 문제 상황의 어린이가 등장하죠.
어른들이 들었을 때 당황스럽더라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린이가 가질 법한 의문이나 고민거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가 쓰는 말이 무엇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이 여러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디어라는 것이 강력하고, 어린이가 미디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데. 제가 생각하기에 많은 경우 어린이들이 보는 영상조차도 어린이가 비하되는 경우가 많고,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그런 존재라거나 그렇게 다루어져도 되는 존재라고 오해하기 쉬운 것 같아요. 한 명의 사회 구성원 주체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어린이 발언대 같은 순간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하루 1분이라도 그런 시간을 내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41쪽
텍스트클러버 3: 유치원 교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어린이라는 세계에 포함되어서 산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특히 고유성에 대한 부분이 너무 좋았는데요. 어린이들을 매일 발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다음 달에 다른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선생님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딱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제가 얼마 전에 국어 선생님들 모임에서 강연한 적이 있어요. 요즘 어린이 혐오 뉴스도 너무 많고, 코로나19도 있고,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지식의 격차라던가 학습 손실 같은 문제를 걱정하시더라고요. (현실이) 절망스러운데 어떻게 하면 이걸 피할까요,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어린이와 있을 때는 좋지만 돌아서면 기운 빠질 때가 있죠. 저는 그럴 때 ‘착하고 강한 사람들의 표정, 내가 만난, 나에게 힘을 주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들려준 말을 구구단 외우듯 외우자’고 말씀드려요. 절망의 순간이 왔을 때 절망의 스위치를 내리고, 희망의 순간을 외워서 떠올리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텍스트클러버 4: 주일학교 선생님입니다. 제가 어린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다 보니 ‘(어린이가) 버릇 나빠지니 격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건전하게 어려워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김: 저는 어린이랑 격 없이도 지내고, 거리를 둘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가 누구고, 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서로에게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가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어린이를 엄하게 대해야 한다는 이유가 ‘버릇이 없어지기 때문이다’는 아닌 것 같아요. 어린이가 버릇 없어지는 건 나중 문제이고, 그것보다는 어린이와 나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했는지가 기준인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어린이와는 서먹한 채로 지내기도 하고, 어떤 어린이와는 격의 없이 지내요. 그런 건 두 사람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버릇 없어진다’는 말 자체에는 저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텍스트클러버 5: 네 살 아이의 엄마입니다. 예전에 어떤 팟캐스트에서, 인터뷰어가 작가님께 ‘어린이 김소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저는 당연히 나를 다독여준다거나 '살아보니까 어땠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나 이제 강아지 기른다~’여서 그때 엄청 큰 위로를 받았었어요. 작가님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궁금해졌습니다.
김: 저는 일찍부터 생각해놓은 할머니 상이 있어요. (웃음) 일단 뚱뚱해져야 해요. 그리고 아파트 1층에 살 거예요. 제 평생 모아놓은 어린이책을 전시해두고, 오픈하우스처럼 조건 없이, 재미있게 만들어 두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어린이가 드나드는 공간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될 것 같아요. 독서교실을 해보니 어린이가 다녀가면 공기가 달라지고, 어린이가 없을 때에도 (공간에) 활력이 있어요. 어린이를 만나야 생기를 얻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이 책이라는 큰 자산이라 어린이책을 나눌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유: 어린이라는 세계는 참 신기한 책입니다. 재밌게 읽고 나서 느닷없이 저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 말씀을 들으며 몇 가지 순간이 생각났어요. 첫 번째는 기획자 우주에게 <어린이라는 세계> 북토크 만들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던 것, 그다음 벌벌 떨면서 이진 팀장님께 메일을 썼던 것, 그리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것. 그 순간의 저를 엄청 칭찬해주고 싶어요.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 뒤편, 독자의 뒤통수에서 하트와 집중의 열기가 막 느껴졌어요. 이 자리에 있는 50 여명에게 정말 좋은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김: 오늘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사심을 가장 많이 채운 사람은 저예요. 제 얘기도 하고 싶고, 여러분 이야기도 듣고 싶었거든요. 책 내고 나서 대면 강의를 못했어요. 온라인 강의로도 최선을 다하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거든요. 제가 오늘 가장 많이 만족했고, 제가 오늘 가장 많이 힘을 얻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붙잡고 싶지만 (웃음), 다음 기회에 정말 1박 2일로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뜨겁게 나누었던 텍스트클럽. 함께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께 울림 가득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텍스트클럽 시즌 1은 ‘질문’을 시작으로 ‘처음’을 거쳐 ‘우리'에 도착했습니다. 김옥영 작가님과 함께 했던 첫 번째 시간에는 ‘다큐멘터리'에서 ‘질문’이라는 키워드를 골라내어 깊이 탐구했습니다. 김민정 시인님과는 차오르는 감각을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처음'을 맞이하는 용기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시즌 1의 마무리였던 김소영 작가님과의 시간을 통해서는 관계 맺음과 마음의 태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텍스트클럽은 우리가 함께 나눈 텍스트의 경험이 오래가는 여운으로, 삶의 작은 변화로 여러분들 곁에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혼자 읽고 마는 일인칭 독서가 아니라, 차분한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텍스트를 이해하는 다양한 시각을 얻어가는 입체적인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몸으로 텍스트를 경험하는 텍스트클럽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대면 만남이 더 안전해질 때까지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파랑새극장에서 곧,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