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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Dec 01. 2022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3. 짐승일기 with 김지승

글 | 파란

사진 | 파랑새극장



매월 마지막 수요일, 파랑새극장에서 '파랑새극장 공공무대'가 진행됩니다. '파랑새극장 공공무대'는 무대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낭독과 대화가 있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 공공무대는 김지승 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작가님의 멋진 목소리로 <짐승일기>의 일부를 들어보고, 절친이신 김혼비 작가님과 대화를 통해 작가 김지승에게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90분이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 대화를 전해드립니다.



#일기 #형식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3. 짐승일기 with 김지승 ©파랑새극장


김혼비: '조각난 일기'라는 표현에 걸맞게 <짐승일기>는 맥락에서 자유로워요. 덕분에 조각들 안에서 펼쳐지는 문장의 밀도가 굉장히 높고 통찰 또한 깊어서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인덱스를 붙이다가 포기했다" 같은 감상들이 정말 많아요. 아마 그런 분들이 이런 걸 궁금해할 것 같은데, 작가님 혼자 쓰는 일기도 이렇게 쓰세요?


김지승: 일단 저는 일기를 쓰지 않아요.(웃음) 쓰면 이렇게 쓸까 봐 안 쓰는 것 같아요. 대신에 저는 낙서와 메모를 정말 많이 해요. 문제는 한곳에 하지 않고, 티슈나 영수증같이 보이는 곳에 해버려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방을 뒤엎어 낙서들을 찾아야 해요. 책상에도 그 수많은 포스트잇... 왜 그렇게 많이 살까요? 문구점을 해도 될 것 같은 상황인데 그걸 다 써요. 다 쓰고 아무 데다 붙여놓으면 방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그걸 다 찾아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정리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각조각 나는 것 같아요.


김혼비: <짐승일기>를 봤을 때 에세이라는 장르에 딱 맞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굉장히 틀에서 벗어난 글쓰기로 느껴지는데, 사실 틀에서 벗어난 글쓰기가 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여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안 자유로울 수 있는 작업인데, 이런 형식으로 이런 표현들로 글을 쓰시면서 자유롭던 순간과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이 궁금했어요.


김지승: 이 질문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의도한 게 아니에요. 이를테면 '내가 격을 벗어나야지', '틀을 벗어난 글쓰기를 해야지'라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렇게 읽으셨다면... 자꾸 개인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어 죄송한데, 5개월 동안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연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 글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나온 글이었어요. 호흡도 그렇고 조각난 부분도 그렇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긴 시간을 의식이 없는 채로 있어야 했고, 어떤 때는 상상계 안에 갇힌 듯한 느낌도 들었고, 무의식을 받아쓰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썼는데 그러고 나서 격이나 장르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사실 답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자기회의 #글쓰기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3. 짐승일기 with 김지승 ©파랑새극장


김혼비: "화자가 자기 힘을 믿어야만 세상에서 이야기가 그 존재를 배정받게 됨을 기억하자." 이렇게 쓰셨어요. 자신을 믿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특히나 자신의 '화자됨'을 믿는다는 건 굉장히 힘든 행위인데,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쉬운 행위란 말이죠. 제가 아는 김지승 작가님은 100% 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고, 자기의 화자됨을 오랫동안 못 믿으셨던 분인데 그 힘듦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떻게 자기 회의와 끊임없이 싸우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지승: 자기 회의는 제가 <짐승일기>에도 썼는데 싸우면서 도망가기, 도망가면서 싸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관계를 계속 그렇게 맺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자기를 강화하는 쓰기나 자기를 확신하는 글쓰기를 너무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자기를 회의하면서 글쓰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봐도 옆에 앉아있고 싶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손을 잡아주면서 "그렇게까지 의심하지 않아도 돼."라고 좀 오만하게라도 확신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반면에, 자기 확신에 차있는 글이나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강화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의 글은 조금 괴로운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 나눈) 여성적 글쓰기에 관련해서 우리가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타자를 발견하는 글쓰기'라고 해볼 수 있다면, 알 수 없음과 회의와 불투명한 어떤 영토를 계속해서 고수를 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굉장히 힘들긴 하죠. 하지만 적어도 타자를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끝까지 외롭지는 않은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여기 오신 분들도 아마도 그렇게 연결되신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혼비: 가끔 그런 게 너무 피곤한 싸움으로 느껴지거나 지치지 않으세요? 가끔 지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나의 동지들이 이 불투명한 영역 안에서, 이 영역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느라고 엄청난 고투를 하고 있는 반면, 확신에 찬 글쓰기들이 훨씬 더 각광받고 있는 시대란 말이죠. 


김지승: 어떤 것을 결심해서 거기서 그러고 있다기보다는, 아까도 비슷한데 저는 그렇게 밖에 못 쓰는 사람인거죠. 그곳에 오시는 분들도,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도 실제로 그 확신에 찬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갈 수 있는 사람은 가는 거예요. 그걸 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심지어 그걸 할 수 없는 사람들, 그 경계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분들께는 경계를 가르쳐주고 얘기를 해드리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사실 그들과 못 싸워요.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 안 다칠 정도로만, 우리를 보호할 정도로만 언어를 쓰는 것이지 어떻게 싸우겠어요.



#짐승일기 #매개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3. 짐승일기 with 김지승 ©파랑새극장


김혼비: 한 분께서 독자들에게 <짐승일기>가 어떤 책으로 남았으면 하고 바라는지 물어보셨어요.


김지승: 이건 굉장히 명확해요. 매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난주에 부산 책방한탸에 갔을 때 어떤 독자께서 '아, 이런 감정도 표현해도 되는 거구나, 말해도 되는구나, 써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슬프게 들리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기뻤어요. 거창할 수 있지만 저는 이 책이 '쓸 수 없음'에서 '쓸 수 있음'으로 가는 데 있어서 매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는 나도 써'라고 다들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다들 자신의 아픈 몸에 대해서, 탈락된 몸에 대해서, 찌그러진 몸에 대해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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