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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Dec 16. 2022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4. 이제 그것을 보았어

with 박혜진

글 | 파란

사진 | 파랑새극장



매월 마지막 수요일, 파랑새극장에서 '파랑새극장 공공무대'가 진행됩니다. '파랑새극장 공공무대'는 무대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낭독과 대화가 있는 시간입니다. 


네 번째 공공무대는 평론가, 편집자, 작가 등 문학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계신 박혜진 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이제 그것을 보았어>의 일부를 낭독하며 공공무대의 시작을 열어주셨고, 정용준 소설가님의 사회로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 대화를 전해드립니다.



#읽기 #나를연습하다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4. 이제 그것을 보았어 with 박혜진 ©파랑새극장


정용준: 이 책은 읽기에 대한 기록이잖아요. 제가 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저의 가장 큰 정체성은 독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소설 쓰기도 읽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내가 어떤 읽기에 대한 영향력으로,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소설을 쓸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신의 읽기 경험을 고백해 놓은 책이나 발언을 참 좋아하는데요. 작가님에게 읽기란 어떤 것이고 이 책에는 어떤 마음이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혜진: 제가 이틀 전에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어요. 기록들을 보니 (가장 가깝게는) 5년 전에 읽었더라고요. 고전 작품은 읽을 때마다 많이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2017년 기록과 이번에 느낀 바를 비교해 봤는데 너무 정답처럼 다른 거예요. 전형적으로.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때는 30대가 갓 넘었을 무렵이었어요. 그래서 그랬는지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과정에 몰두해 있었더라고요. 자기 싸움을 하는,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 


이번에 다시 읽었더니 첫 페이지의 얘기가 너무 와닿는 거예요. 첫 페이지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산티아고 노인이 84일 동안 바다에 나가잖아요. 그런데 계속 고기를 못 잡는 거예요. 처음 40일 동안은 마놀라라는 소년이 같이 고기 잡는 것을 보러 나가곤 했는데, 노인이 나가서 매일 빈손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저 노인은 운이 다했다.'(하는거죠.) 40일 지나고부터는 혼자 나가요. 이게 너무 나이에 대한 비유 같은 거예요. 일생을 84년 정도로 놓고 보면 40년까지는 허탕을 쳐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기대를 해요. 무언가는 되겠지. 그런데 계속 안되면 이제 관전자가 없는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그 앞 장면을 읽는데 지금 내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구나, 내가 지금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많이 있었는데, 나에게 보여줬던 관심을 거둬갔을 때, 거둬졌을 때. 사랑은 주는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럼 그때 나는 내 싸움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지?' 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나 봐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책을 읽는다는 게 나를 연습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은 계속 실전이니까 상처를 주고받고 이런 것들은 그냥 벌어지는 일들이잖아요. 근데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변하는 것들을 확인하고, 지금 내가 어떤 상태고, 지금 내가 뭘 두려워하고, 이런 걸 계속 연습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연습을 한 것들이 쌓이면 나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를 연습해서 나를 잘하게 되려면 읽기라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용준: <노인과 바다>를 그렇게 해석한 건 처음 듣기는 했지만 너무 와닿네요. 저도 읽기는... 나 자신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많이 변했는지를 확인하려면 옛날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읽어보세요. 도대체 내가 왜 저기에 밑줄을 그었나. 반대로 내팽개쳤던 책을 다시 읽어보면 몇 년 만에 이렇게 재미있었구나 (싶을 수도 있어요.) 그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많이 변한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끝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4. 이제 그것을 보았어 with 박혜진 ©파랑새극장


정용준: 이 책의 컨셉은 '끝'입니다. 이 컨셉부터 너무 좋죠. 어떻게 보면 자신이 읽은 좋았던 책에 대한 독후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부분보다도 마지막에 대한 인상과 단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한 주제로 이어져가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고, 소설가로서 이야기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줬어요. "우리가 대부분 처음을 많이 강조하고, 유명한 책들도 처음을 보는데... 끝은 다 읽은 사람만 누릴 수 있고, 다 읽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끝이야.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글을 쓸 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작가님에게는 좁게 말하면 이 책의 끝이고, 어떤 문학의, 이야기의, 특히 끝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길래 이런 글을 쓰게 되셨을까요?


박혜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어떻게 이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게 되시면... 반복적으로 했던 이야기는, '진짜 좋은 끝. 문학작품이 잘 끝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어디서 배워야 하지?' 여러 끝들이 있죠. 찾아보면 되게 많은 용어들이 있더라고요. 트위스트 엔딩, 제로 엔딩. 흔히 알고 있는 해피엔딩, 새드엔딩 이런 게 아니고서라도 여러 가지가 있긴 한데,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프로페셔널 에디터로서, 전설의 편집자들처럼 한 마디를...(웃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표면적이었던 것 같고, 시작은 될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끝을 탐독할 수 있게 되는 가장 큰 동력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작가들은 위대하다'라는 생각이 내심 있었고, 끝이라는 장면에 집착을 하면서 보면서 점점 더 그 생각이 강해졌어요. '작가는 인간으로서 위대한 존재야'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끝은 변하겠죠, 당연히. 그다음에 무언가 오고 어떤 변곡점에 이르러서 한 상태가 끝을 맞이하는 것이고, 그 상태의 끝일뿐인 거잖아요. 모든 것의 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건 정말 죽음밖에 없고, 죽음마저도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의 시점으로 전체를 보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근데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좀 다른 시점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 때 인간은 처음을 만들고 끝을 만들잖아요. 어쨌든 끝이 있어요. 열린 결말이라고 하지만 그 결말조차도 마지막을 지은 것이거든요. 인간의 보통 일상 그리고 보통의 시선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인 것 같았어요, 저한테는. 작가는 인간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알 수 없음에 대해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끝을 연습하는 것이겠죠. 문학작품이 인생 스포 같은 것이잖아요. 알고 보면 덜 놀라잖아요. 괜찮다는 걸 아니까. 그런 측면들도 있다고 할 수 있겠고... 그런 여러 가지들... 작가가 끝을 만든다는 것에 매력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시선을 배우고 싶기도 했고.



#문학적인삶

파랑새극장 공공무대 04. 이제 그것을 보았어 with 박혜진 ©파랑새극장


정용준: 다양한 글쓰기, 다양한 책 읽기, 다양한 문학적인 삶을 사는 박혜진의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박혜진: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는 게 분명하게 있지는 않았는데, 바쁘게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에 빠져서, 몰입해서 살고 싶었던 것이 일종의 꿈처럼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본다면 저는 꿈을 이루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빠져있는 것이 책이라는 게 이상하면서도 좋아요.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 바쁜 것도 아니고, 물론 책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이 있기도 하고 마감을 한다는 것은 하나하나 급박한 사건이기도 하지만요. 책을 만들고 글을 읽고 책에 빠져있는 것이 혼자 빠져있기 십상인데, 편집자라는 직업 때문인지 매몰되어 있지 않고 바깥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읽은 책들, 만든 책들을 세상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니 빠져있으면서도 가끔 수면 밖으로 나와있기도 해서, 다른 분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번잡함, 바쁨으로 많이 상상을 하시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일관성이 있고, 일맥하고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일들인 것 같아요.


정용준: 이 책은 어떤 책의 끝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 박혜진의 문학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잖아요. 제가 언뜻 떠오른 것이 정확하진 않지만 '문학은 평생 직장 같다.' 이런 문장도 책 속에 있었고, 글 곳곳에 너무 확고한 신념이랄까? 저는 마음에는 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확신에 찬, 심지어 '문학이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일언지하에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너무 당연히 문학은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나 대신 말해주는 사람 같아서 읽으면서 든든하더라고요. 방금 해주신 말씀도 너무 힘이 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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