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정지음
글 | 파란
사진 | 파랑새극장
매월 마지막 수요일, 파랑새극장에서 '파랑새극장 공공무대'가 진행됩니다. '파랑새극장 공공무대'는 무대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낭독과 대화가 있는 시간입니다.
2022년의 마지막 공공무대는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과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을 쓰신 정지음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작가님의 생생한 낭독과 함께 시작을 열었고, 이어진 대담 시간에서는 김수희 작가님과 유쾌한 대화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중 몇 가지 대화를 전해드립니다.
김수희: <젊은 ADHD의 슬픔>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라는 관계 에세이를 내셨잖아요. 저도 보면서 울고 웃고 했는데요. 에세이 작가님께서 소설가로 나타나셔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소설을 쓰시게 되셨나요?
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 같은 경우는 <젊은 ADHD의 슬픔>과 비슷한 시기에 계약을 했어요. (<언러키 스타트업>은) 제가 사회 초년생 시절에 겪었던 우여곡절이 많이 담긴 책인데, 그것에 대해 민음사와 회의하는 과정에서 소설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아무래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상상력을 더하는 방향으로 해보자' 이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수희: 그래서 이제 '시트콤 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탄생한 것이군요. 저는 처음에 시트콤 소설이라고 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지음 작가님 밖에 나오지 않아서 '지음 작가님만의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읽었을 때 '이 장르 명명이 적절하다', '무엇을 얘기하는 지 알겠다', '정지음 식의 소설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 장르는 어떻게 탄생을 한 것인지, 평소에 시트콤을 좋아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지음: 사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내가 이제 웃겨볼게'라고 하고 하나도 웃기지 않으면 사람이 너무 민망하잖아요. 그래서 출간 직전에 조금 겁이 났어요. (시트콤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빼자고도 했고… 그런데 편집자님들과 인쇄팀에서 웃기다고 괜찮다고 해주셔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트콤 소설을 검색해보지는 않았어요. (웃음) 누군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안 한 지는 몰랐습니다. (웃음)
시트콤을 평소에 보는데, 미국의 'Friends'를 제일 좋아하고, 한국에는 골라서 볼 만큼 다양하지는 않아서 보편적인 '거침없이 하이킥'과 같은 시트콤을 많이 봤어요.
김수희: (<언러키 스타트업> 안에서) 인물 간의 관계가 변화하고, 거리감 그런 지점들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 결국 회사도 관계의 집합소이구나. 지음 작가님의 지금까지의 책들도 관계에 집중한, 그것이 꼭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의 관계, 회사라는 공동체와의 관계 등 관계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관계라는 주제는 작가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고 싶은 주제인가요?
정지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을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있고요, 그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학문이든 경지가 있잖아요. 근데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체가 처음 보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달한다거나 이제 알만큼 알았으니 질린다는 식으로 터득할 수는 없잖아요. 무한정 새로운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계속 만나다 보면 어떤 불확실한 통계가 생기긴 한다는 것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어떤 사람도 사람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관계를 중심으로 하면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아요.
질문자 1: 아까 고민 상담을 많이 해주신다고 해주셨는데요. 반대로 고민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슬픔이나 답답함을 타인에게 잘 꺼내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지만 나름대로의 무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음: 저는 기본적으로 저의 기억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웃음) 멀지 않은 미래에 이 고민을 까먹을 것을 알아요. 그러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고민이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이 고민이 너무 가까이에 있을 때는 제가 절대 고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 일곱 명이 코끼리를 만지면 다 다르게 이야기한다고 하듯이. 지금 내 시야가 너무 좁으니까 아무리 고민해도 지금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 하나만 내리고 고민 자체를 유보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성숙한 성인으로서 소화할 수 있을 때 다시 진지하게 해결하겠다고, 진지한 고민은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사소한 고민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편입니다. 한편으로는 미룰 수가 없는 고민들은 운에 맡기는 것 같아요. 우연을 좋아해요.
질문자 2: 저는 <언러키 스타트업>에서 '지원'과 비슷해요. 지금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자기 연민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정지음: 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유형은 자기 연민을 겨울잠에 쓰는 먹이처럼 조금 조금씩 먹으면서 괜찮아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유형은) 자기 연민 때문에 시야가 막힌다거나 가야 할 길을 못가신다거나 하는 손해 보는 타입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 연민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가'에 앞서서 내가 자기 연민으로 인해 위로를 얻고 있다면 그래도 되는 때라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고. 내가 조금이라도 자기 연민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있는 것 같다면 차라리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주변에 의해 위축될 때 그런 것에 의존할 때가 많거든요. 최대한 이득을 얻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자기 연민을 하지 말자'보다 '나는 내가 불쌍해 죽겠어'라는 게 오히려 감정이 해소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질문자 2: 그런 것 때문에 관계를 더 잘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친구에게 상처를 많이 주게 되는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지음: 자꾸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을 때 저의 요령이 하나 있다면, 가장 쉬운 것은 생각나는 것의 두 번째 답변을 하는 것이에요. 내가 안 좋은 상황이라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좋은 이야기가 바로 나오기 힘들잖아요. 예를 들어, 친구가 잘 됐을 때 '지금 그런 얘기가 나와? 나도 축하는 해.'라는 생각을 한다면 "나도 축하해"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도 내가 자꾸 말실수를 한다 싶으면 세 번째도 갈 수 있어요. '진짜 어이가 없네. 너만 잘 났냐? 나도 잘났다.'라면 "나도 잘 하는 것 있어". 마음에 너무 여유가 없을 때는 전적으로 진심이고 결백하려고 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을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022년의 공공무대는 다섯 권의 책과 다섯 명의 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매시간을 채워주신 작가님들과, 관객분들,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