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외로워진다
스터디 모임을 할 때 였다. 우리는 애매하게 늘 점심시간에 모일 수 밖에 없었다. 회비를 모아서 식당의 식권을 왕창 샀다. 배고픈 학생이었지만 식권이 있어서 늘 든든했고 메뉴 걱정도 없었다.
어느 날 메뉴에 스터디 팀원들이 못 먹는 식단이 나왔다. 해물이나 밀가루를 못 먹는 팀원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난 다 먹을 수 있는 식단이었다. 팀원들은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식권을 쓰고 혼자 먹을 수도 있었지만 팀원들을 따라 다른 것을 먹으러 갔다. 사실은 식권을 써서 혼밥 하고 싶었다. 다른 식당을 찾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메뉴가 내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럼 혼자 먹으러 간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따라 나선다. 나는 팀원들의 식습관을 배려하는 팀원으로 보이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척을 한 거였다. 피곤한 인생이다.
돌아돌아 식당에 들어갔다. 하필 팀원들이 식권만 챙기느라 카드를 놓고 왔다. 내가 대신 계산하면 이체해준다고 한다. 얼떨결에 내가 결제했다.
나는 먹고 싶은 메뉴도 못 먹고 돈도 많이 썼다. 마음을 달랠 달달한 후식이 필요하다. 나만 혼자 사기엔 눈치가 보인다. 나는 팀원 몫까지 후식도 샀다. 후식은 값이 얼마 안하길래 내가 산다고 했다. 결국 밥값 후식값 다 냈다.
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헛헛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점심이었을까? 나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야박한 사람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먹고 싶다고 말도 못한다. 내가 후식을 살 이유가 없는데도 후식을 사버렸다. 그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데도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다.
비굴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었다. 겁이 많고 줏대가 없이 남에게 굽히기 쉬운 모양. 그 모습이 그 날 내 모습이었다. 점심메뉴를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겁이 많은 사람. 줏대 없이 상대의 의견에 늘 맞추는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남에게 잘 굽히는 시람. 그게 나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나를 굽혔다. 재미없어도 억지로 웃고, 불편해도 안 불편한 척 하고, 싫어도 좋은 척 했다. 그게 나를 향한 폭력인지 몰랐다. 적절한 감정의 표출이 이뤄지지 않아서 늘 불만이 넘치면서도 좋은 사람인 척만 하려니 그렇게 속으로 곪는 거였다.
이런 틀을 깨고자 조금씩 연습을 시작했다. 남에게 부탁을 전혀 못하는 틀을 깨고 싶었다. 가벼운 부탁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늘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들어만주던 입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문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추워서 그런데 문을 조금만 닫아주실래요?” 하든지, 음료를 주문 할 때 “얼음을 조금만 넣어주실래요?” 하든지, 카드를 놓고 오면 “제가 이체해드릴게요. 같이 계산해주실래요?”하든지.
심리 분석가가 그러는데 나와 연관이 없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부탁을 하면서 점차 내 근처의 사람으로 부탁을 늘려가보는 것이 인간관계에 좋은 시작이라고 한다. 무리한 부탁 말고. 가볍게 들어줄 수 있는 부탁 말이다.
그 부탁을 한 뒤에 잊지 말 것은 고맙다는 표현이다. 그 고마움을 들은 상대는 인정 받고 싶고, 베풀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충족된다. 그렇게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늘 도움만 주면서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던 사람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을 이제야 배운다.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서 그렇다. 나도 이 방법을 따라하면서 늘 나를 조여오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전보다 확실히 감정이 더 풍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