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은 감사를 찾기로 한 이유
나는 몸이 아프다. 30대 나이에 섬유근통으로 류마티스내과에서 치료를 받아봤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 대기석에 앉아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겨울이 있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 지하철 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다 고장이 났다. 나는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었다. 어쩔 수 없이 개미 걸음처럼 엉금엉금 기어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내가 아파야 하는걸까? 왜 하필 많은 병 중에 섬유근통인걸까? 하면서. 그 날 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이 너무 원망스럽다. 체력이 너무 약해져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게 어렵다. 친구들과 같이 놀면 나는 빨리 방전 되어서 집에 먼저 가거나 힘겨워하며 논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무리하게 일을 하면 근육이 굳어서 통증이 온다. 그럴 땐 바로 누워서 쉬는 게 최고다. 그런데 회사에서 누울 수는 없으니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다. 지금은 퇴사를 했다. 어떤 회사를 갈 수 있을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너무 복잡하다. 최근에는 난생 처음 성인 여드름이 얼굴 전체에 퍼졌다. 조울증도 생겼다. 처방 받은 약 덕분에 살이 쪘다. 그래서 또 원망이 된다.
유튜브를 보다가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감사한 것을 찾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아픈 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서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선물이라고 했다. 그러자 내 원망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원망이 어쩌면 원망을 계속 불러 들여서 나를 더 지옥 같은 마음에 가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유튜버를 지켜본지 좀 되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환경을 감사해한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 계속 늘어난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이다. 지금의 내 멘탈로 그 환경을 마주했다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감사로 나아간다. 나는 원망에서 원망으로 그는 감사에서 감사로 나아간다. 출발은 비슷했는데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고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그래서 나는 원망은 원망을 끌어들이고 감사는 감사를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감사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오늘의 나는 여드름으로 피부가 뒤집어진 섬유근통을 가진 조울증 환자이다. 그런데도 감사일기를 써서 감사가 쌓이면 어떤 감사가 끌려올지 궁금해진다.
오늘의 감사
*피부과를 처음 방문했고 치료가 시작 되었음에 감사하다.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처음으로 운동을 간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