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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붐 Feb 05. 2021

#5 산티아고 순례길 - 하루에 47km를 걸었다고요?

47km면.. 경기남부 정자에서 경기북부 의정부까지 입니다만?

수언니와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앞에도 말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특성상 보통 오늘 마주친 사람들은 웬만하면 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다음 날도 계속 마주치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루 뒤처지거나 하루 앞서지 않는 이상 우린 계속해서 저 **여행사 단체관광객들과 일정을 같이해야 한다. 마치 저들의 일행인 것처럼.


하루를 쉬어가기엔 한국에서부터 계획해온 나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그렇다면 하루를 앞서야 한다는 것인데, 언니도 나도 버스를 타긴 싫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하루에 이틀 치를 걸어 하루를 앞서는 방법밖에..


대략 계산을 해보니 우리가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약 47.6km정도였다. 팜플로나에서 에스테야까지. 47.6km면 경기 남부인 정자에서 한강을 가로질러 경기 북부인 의정부까지의 거리이다. 하루 47.6km를 걷는다는 결정을 내리니 언니와 나는 사뭇 비장해지기 까지 했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하기도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걸어야 한다는 것. 몸짓만 한 배낭을 메고 그 거리를 걷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리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 우리의 배낭을 오늘 우리가 묵게 될 숙소에 미리 보냈다. 한국에서부터 다짐했던 것이 동키 서비스는 절대 이용하지 말자였는데.. 그래도 버스를 타지 않는다는 다짐을 지켜냈으니 이 정도는 스스로와 타협을 하고 동키 서비스 신청 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우리는 서둘러 채비를 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침도 거른 채 한 시간쯤 걸었을까 도저히 배가 고파 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길을 걷다 만난 바에 들어가 간단한 빵과 주스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했다.


막 빵과 주스를 받아 먹으려던 찰나, 밖에서부터 굉장히 낯익은 언어가 들려왔다. 짤랑하고 열리는 문과 함께 **여행사의 단체여행객 6~7분이 들어왔다. 언니와 나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빵과 주스를 흡입하듯 먹었다. 그러던 중 한 여행객이 한국인이냐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와 나는 겉과 속이 매우 다른 사람이라 속은 '타도**여행사'를 외치며 그들에 대한 분노를 가득 담고 있었지만 반갑게 인사하는 그분에게 그 분노를 내비 칠순 없었다.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6~7분의 관광객들이 우리 자리로 우르르 모여들며 아가씨들 둘이 어떻게 이 힘든 길을 걷냐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셨고 우린 어색한 웃음과 기계적인 답변을 내놓으며 이 무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갈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아주머니께서 본인이 메고 있던 보조가방 속에서 한국 과자를 꺼내 우리에게 건네셨다. 우린 그 과자를 받으며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건네고 그 바를 나왔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블로그나 서적에서 많이 봤던 용서의 언덕에 도착하였다. 용서의 언덕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얼마나 용서받을 일이 많기에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어마 무시한 바람이 부는 겁니까! 바람과 맞서 싸우며 마침내 언덕 맨 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내 사진을 찍어주는 수언니는 바람 앞에 쩔쩔매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람에 맞서며 찍은 용서의 언덕 인증샷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것도 잠시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늘은 무려 47km를 걸어야 하는 날이기에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4~5시간을 걸었을까, 원래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오늘 우리가 묵었을 동네에 도착하였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하였다.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언니, 걸을만한 거 같은데요? 닥쳐올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채,,


스파게티와 피자로 해결한 그날 점심

늦장 부리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맥주를 먹어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금 길을 나섰다. 처음엔 음악도 듣고 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하지만 이내 둘 다 말수가 줄어들고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쉬고 나면 다리가 더 아파 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리 4~5시간을 더 걸었을까. 언니는 발이 부어 도저히 등산화를 신을 수가 없다며 슬리퍼를 꺼내 들었고 나는 넋이 나간사람마냥 기계처럼 다리를 움직이며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한 마을을 지날 땐, 차를 타고 이동 중인 한 스페인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너네 너무 지쳐 보이는데, 괜찮으면 내가 너희를 데려다줘도 될까? ‘ 이에 우린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며 다시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길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에 우린 시간에까지 쫓기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서로에게 말을 건넬 힘조차 없었기에 서로의 위치만 확인하며 걸었고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정말 도저히 못 걷겠다 싶었을 때 우리의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의 주인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그리고 너희 정말 지쳐 보인다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우리의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고 방을 안내해주었다. 배정받은 침대에 침대보를 깔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아, 세상을 다 가진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저녁을 먹을 힘도 없었지만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우린 근처 마트에서 파스타 소스를 사와 간단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서둘러 잠잘 채비를 했다. 오늘 너무도 고생한 다리에게 마사지를 해주려고 바지를 걷어올리는 순간 알았다. 아니 몰라도 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 12시간을 걸으면 다리에 멍이 생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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